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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장 컬럼

학교장 칼럼을 시작하며

by 답설재 2007. 9. 28.

제가 근무하는 남양주양지초등학교 홈페이지에서 '학교장 칼럼'이라는 이름의 코너를 발견했습니다. '칼럼'이라고 하니까 웬지 좀 고급스럽고, 그러면서도 제가 그 칼럼을 쓰는 사람이니까 괜히 좀 주제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한 달이 다 되어가도록 생각해도 그 곳을 빈 난으로 두는 것이 부담이 되어 한번 써보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그 칼럼을 이곳에도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학교장 칼럼」을 시작하면서

 

 

제가 이 학교에 온지 4주째입니다. 그동안 홈페이지의 이곳저곳을 들여다보았고,「학교장 칼럼」이란 코너도 두 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당연히 아무것도 실려 있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 코너의 주인이고 글을 쓴 적이 없으므로 아무것도 실려 있지 않은 것이 당연한데도 두 번을 들어와 비어 있는 것을 확인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런 난이 있구나 싶어서 들여다보았고, 두 번째는 아무것도 실려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려고 들여다보았습니다.

 

사실은, 이 학교에 와서 몸과 마음이 무거워서 당장 제게 맡겨진 ‘학교장 칼럼’을 쓰기가 어렵기도 했습니다. 몸과 마음이 무거웠다는 것은, 이빨 치료 과정이 아주 고되었고 그 부담이 정서적인 스트레스에 편승하여 상승작용을 일으킨 것입니다. 정서적인 스트레스가 어떤 것인가, 궁금하십니까? 누구나 사는 곳을 옮기면 새로운 환경에서 오는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지만 그동안 살펴본 바로는 우리 학교는 아이들도 착하고 교직원들도 아주 성실하여 그런 것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거의 없었습니다. 저는 다만 학교의 거의 모든 일을 교장에게 일일이 물어보고 결정하고 시행하는 우리나라의 이 학교문화를 아주 싫어합니다. 그대로 토로하면 ‘이렇게 해서야 어떻게 교장 노릇을 하겠나?’ 싶습니다. 느낌으로는 숨 쉴 겨를이 없는 것 같고, 이렇게 하면 선생님들이나 행정직원이 어떤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우며, 그렇다면 어느 학교에서나 그 학교의 교육수준은 그 교장의 수준을 넘어설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말이 나온 김에 우리나라 학교문화 이야기를 좀 더 하겠습니다. 가령, 어떤 행사(주요교육활동)를 언제,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내용으로 실시하고,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결정할 때 담당 선생님께서 계획한 것을 교감을 거쳐 교장의 결재를 받는 절차로 끝낸다면 그것은 그 담당자와 교장이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것이고, 그것이 발표되면 교장의 지시․명령 사항이 되는데, 그러한 과정 혹은 절차가 비합리적이라는 뜻입니다. 교장이 왜 모든 일을 지시․명령하고 감독하는 일을 해야 합니까? 학교교육을 왜 그렇게 결정해야 합니까! 우리 학교의 일은 우리 학교 학생들이나 교직원들이 결정해야 하고, 그렇게 결정된 일에 대해서 교장이 책임을 지고 실천해야 하며, 이러한 과정과 절차에서 교장은 국가로부터 권위를 부여받은 전문가로서 자문하고 지원하고 최종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하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잘 모르고 있고, 그저 일반 행정기관처럼 모든 걸 교장이 지시․감독하는 학교문화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면, 그런 일이라면 누가 교장을 하면 어떠랴‘ 싶은 생각으로 교장임용제도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고 혼란스러워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은, 우선 다시 이러한 학교문화에 적응하는 데서 몸과 마음이 무겁기도 하지만, 얼른 이러한 문화를 더 자율적이고 더 합리적인 의사결정과정으로 바꾸고 싶은 욕심과 조바심에서 우러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겠습니까. 다 절차와 방법이 필요하므로 시간이 흘러야 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제 생각을, 이미 만들어져 저를 기다려준 이 난을 통해서도 밝혀 나가겠습니다.

 

‘칼럼’이 어떤 성격을 지닌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습니다. 사전에서 ‘칼럼column’을 찾아보았더니 ‘신문, 잡지 등에서 시사․사회․풍속 등을 짧게 평하는 기사 또는 그 난欄’이라고 되어 있고, 다시 ‘column’을 찾아보았더니 건축에서의 기둥이나 원주, 원주(기둥) 모양의 물건, 군대의 종대, 함대의 종렬이나 종진縱陣, 인쇄에서의 종행縱行이나 단, 신문의 특정기고란, 컴퓨터의 세로 칸, 정치에서의 당파나 후보자의 후원회, 식물의 꽃술대 등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칼럼이 어떤 성격의 글인지 아직도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글이라는 것은 파악될 듯합니다. 저는 이 난의 주인이 된 것을 자랑스러워하며 그런 성격의 글을 싣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칼럼이 독단적인 경향으로 흐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문이나 잡지의 칼럼은 대체로 한 명이 독점하여 쓰지 않고, 그러므로 바르지 못하거나 창의성이 떨어지거나 재미가 없거나 하면 당장 필진이 바뀔 수 있는데 비해 이 칼럼은 제가 절대적인 권한과 책무성을 지니고 있어 저 말고는 아무도 쓸 수 없는 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칼럼을 읽는 교직원, 학부모 여러분께서 끊임없는 질정叱正을 해주셔야 하며, 꼭 그렇게 해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여러분의 그 협력․협조에 의해 이 난은 빛나는 코너가 될 것입니다. 저는 이 난에 들어올 때마다 지금은 제가 절대적인 권한을 지닌 그만큼의 절대성으로, 시간이 흘러 제가 이 학교를 떠나게 되면 그 이튿날부터 이 난의 주인은 바뀐다는 것을 늘 마음에 새기면서 그 한시성限時性 앞에 겸손해지도록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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