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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장 그르니에6

선생님! 민이가 선생님 뵈러 갔어요 (2021.8.27. 수원일보) 선생님! 저 민이 엄마예요. 민이는 오늘도 선생님 뵈러 갔어요. 민이의 이 시간이 전에 없이 고맙게 느껴져요. 유행가 가사 같아서 좀 그렇지만 행복이 별것 아니라면 전 지금 행복해요. 코로나가 뭔지도 모른 채 살던 지지난해까진 느낄 수 없었던 행복이죠. 민이가 읽은 동시 한 편 보여드릴게요. “아침에 일어나니/목이 돌아가지 않는다//친구가 부르면/목을 돌려야 하는데//몸을 돌린다//근데 친구들이/이런 나를 더 좋아한다//목만 돌렸을 때보다”(몸을 돌린다, 이장근) 이 시가 새삼 다가왔어요. 요즘 아파트 사람들이 서로 잘 쳐다보지를 않아서예요. 마스크가 얼굴을 가려서라고 하겠지요. 아니에요. 행색만 봐도 알잖아요. 눈인사라도 하며 지내던 사람들이 서로 외면하는 것 같아요. 일부러 그러진 않겠지만 ‘사회적 .. 2021. 8. 27.
여인들, 나의 여인-영혼을 그린 그림 〈검은 타이를 맨 여인〉 1917. 캔버스에 유채. 65×50㎝. 개인 소장. 1 변함없는 충실성, 다시 말해서 변함없이 지속되는 믿음 없이는 그 어떤 것도 위대하지 않다. 마음을 가다듬고 집중하는 명상 없이는 그 어떤 것도 진정하지 않다. 나는 조각상들의 죽은 듯 표정 없는 눈을, 그 눈에 가득한 그 모든 고독을 생각해본다. 삶에서 멀리 물러나 있는 그 존재들만이 오로지 삶을 판단할 수 있다. 움직일 줄 모르는 그들의 부동성이 우리를 움직여 우리 자신의 밖으로 넘어서게 하고 앞을 보지 못하는 그들의 맹목이 우리의 눈을 밝혀준다. 오이디푸스는 사람들의 시선을 이끌어 한 곳을 응시하게 한다. 안티고네를 인도하여 그녀가 아테네의 찬란한 빛을 발견하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오이디푸스다. 나는 조각상들과 그림들.. 2019. 3. 19.
장 그르니에 《지중해의 영감》 장 그르니에 《지중해의 영감》 김화영 옮김, 이른비 2018 레탕의 산책길에서 나는 자주 뱃머리에 조가비가 박힌, 그 뒤집힌 나룻배의 빛나는 존재에서 위안을 얻곤 했다. 나는 무용한 작업의 시간들을, 생산적인 게으름의 시간들을, 배움에 바쳐야 했을 시간들을, 그리고 망각에 기울여야 했을 시간들을 생각했다. 어느 쪽을 택해야 할지 알 수 없다면 행동하는 것과 아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하나씩 하나씩 쌓아올린 지식들이 오히려 우리 눈앞의 진정한 지식을 가린다.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무용한 것을 배우고 우리와 관계없는 '뉴스'들을 알게 된다. 자기 안에 오래 지속하는 어떤 존재를 품고 있으면서 우연적으로 일어나는 것에만 관심을 가진다니,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25~26) 1990년대 초에 번역되었던 『시지프.. 2018. 10. 5.
장 그르니에 《어느 개의 죽음》 장 그르니에 《어느 개의 죽음》 지현 옮김, 민음사 2015 장 그르니에는 알베르 카뮈에게 철학을 가르쳤습니다. "나는 내가 맡은 젊은이들에게 가르칠 책임이 있다는 점보다는 오히려 그들 자신에 대해 가르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그들에게 애착을 갖게 되었다. 나의 책무에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라고 믿었다."1 단순하게(혹은 오만하게) "젊은이들을 가르친다"고 하지 않고 "그들 자신에 대해 가르친다"고 한 그르니에, "나의 책무에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라고 믿었다"고 한 그르니에가 존경스러웠습니다.2 일찍 그를 알았더라면, 나도 조금은 더 나은 교사였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을 '누구에게나' 똑같이 가르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우리 교육을 좀 더 깊이 있게 반성하는 교사였을 것입니다.. 2017. 1. 17.
장 그르니에 『카뮈를 추억하며』 Ⅱ 장 그르니에 『카뮈를 추억하며』 이규현 옮김 , 민음사 2012 □ 독서에 대하여 이렇게 읽었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문학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닥치는 대로 읽고 싶었던 욕심, 많이 읽고 싶었던 욕심에 대하여 생각한다. 나는 일찍 '책벌레'가 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책을 이용하지 못하고, 그 책들 속으로 숨어버렸다. 돈 될 만한 일들을 살펴보듯 책들이 있는 곳에 가보는 취미가 큰 장애는 아닐 것이다. 쑥스러워서 그 습관을 고치겠다고 입에 발린 소리를 하면 의미 있는 일도 아닐 뿐더러 누가 듣기나 하겠는가. 스스로도 이제와서 그나마 우스운 일 아니겠는가. 열여덟 살에 그는 또한 프루스트를 창조자라고 생각했다(이는 그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찬사였다). 그는 프루스트 작품의 엄격한 구성과 .. 2013. 9. 8.
장 그르니에 『카뮈를 추억하며』(Ⅰ) 장 그르니에 『카뮈를 추억하며』 이규현 옮김 , 민음사 2012 Ⅰ 나는 내가 맡은 젊은이들에게 가르칠 책임이 있다는 점보다는 오히려 그들 자신에 대해 가르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그들에게 애착을 갖게 되었다. 나의 책무에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라고 믿었다.(20) 카뮈를 가르친 그르니에의 교육관입니다. '의무적'으로 마지못해 하는 교육이 아니라, '책무성'을 넘어 그 교육을 자신의 '권한' '능력' '가능성' 같은 것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지, 이러한 인식을 보다 일찍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교육자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합니다. 이렇게 덧붙이고 있습니다. "나의 책무에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라고 믿었다."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 2013. 8.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