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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작별5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하지 못하고 나는 작별인사를 하러 왔어요(I have come to say goodbye)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녀의 옷과 마찬가지로 붉고 차양이 넓은, 순례자가 쓰는 모자 비슷한 것을 손에 쥐고 있었는데, 내가 그녀 바로 옆에 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주 멀리 있는 듯 느껴졌다. 그녀의 멍한 눈길이 나를 관통하여 뒤쪽으로 나아갔다. 제 주소와 전화번호를 남겨 놓았으니 언제든 원하시면...(I haveleft my address and telephone number, so that if you ever want...) 나는 문장을 완성할 수 없었고, 어떻게 말을 이어야 할지도 몰랐다. 카타리나 또한 내 말을 듣지 않는 듯했다. 그녀는 언젠가(At one point),라고 운을 떼더니 잠시 시간이 흐른 뒤에 말.. 2022. 4. 27.
《고맙습니다Gratitude》Ⅱ(抄) 올리버 색스Oliver Sacks 《고맙습니다Gratitude》 Ⅱ(抄) 김명남 옮김, 알마 2016 * 아쉬운 점은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는 (그리고 지금도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17)1 * 나로 말하자면 내가 사후에도 존재하리라는 믿음이 (혹은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이) 전혀 없다. 그저 친구들의 기억 속에서 살아남길 바라고……(18)2 * 반응이 살짝 느려지고, 이름들이 자주 가물가물하고, 에너지를 아껴 써야 한다.(19)3 * 크릭은 대장암이 재발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처음에는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냥 일 분쯤 먼 곳을 바라보다가 곧장 전에 몰두하던 생각으로 돌아갔다.(19)4 * 여든 살이 된 사람은 긴 인생을 경험했다.(20)5 〈수은 Mercury〉 * 그6는 예순다섯 살에 자신이 .. 2016. 8. 14.
미셸 투르니에·에두아르 부바(사진)『뒷모습』 미셸 투르니에 지음·에두아르 부바 사진 『뒷모습』 현대문학, 2009(초판 9쇄) ♬ 나를 찾아온 사람(손님)을 잘 배웅하려고 합니다. 돌아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봅니다. 나보다 나이가 적으면 "지켜본다"는 마음을 가집니다. 이 풍습 혹은 예절을 꼭 지키고 싶습니다. 뒤돌아보는 사람도 있고 줄곧 그냥 가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기쯤에서 뒤돌아볼 때는 서로 손을 들어 추가적으로 인사를 나누게 됩니다. 손아랫사람인 그쪽에서 목례를 하는 경우에는 손을 흔들어줍니다. ♬ 뒤돌아보지 않고 줄곧 그냥 가는 사람 중에는, 내가 지켜보고 있는 줄을 아는 것 같은 사람도 있고 모르는 것이 분명한 사람도 있습니다. 모르는 게 분명하다 싶은 사람의 경우에는 '만약 내가 저 사람을 찾아갔다가 돌아나올 경우라면.. 2014. 11. 22.
어느 학부모의 편지 교장선생님~~ 조금 전 전화 드렸던 ○○ 엄마입니다. 3년 만에 들어보는 따뜻하고 인자하신 음성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간의 저의 무심함에 얼굴이 달아오르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이 떠나실 때는 저희를 두고 떠나신다는 서운함이 있었습니다. 지금 전 선생님께서 성복학교에 계실 때 주셨던 '파란편지'를 꺼내 선생님 mail 주소를 확인하고, 선생님께서 쓰신 글을 읽다 눈물이 쏟아져서 컴퓨터 자판기를 쳐내려가기가 힘이 듭니다. 이토록 우리 아이들을, 아니 이 사회를, 이 세상을 사랑하신 선생님과 결코 짧지 않은 2년 6개월의 시간을 함께 나누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이었는지 다시 한 번 뼛속 깊이 깨닫습니다. …(후략)… 아침에 잠이 깨며 용인 수지 성복의 이 학부모를 생각해내고, 흡사 한 무리의 별들 속.. 2010. 7. 13.
조지 윈스턴 『December』 조지 윈스턴 내한 기사를 봤습니다.1 그 여 선생님이 생각났습니다. 1996년이었던가, 서울교원연수원에 가서 몇 번 사회과 교육과정 강의를 했습니다. 광화문 청사에서 그 연수원까지는 얼마 떨어져 있지도 않았지만 사무실 일 때문에 늘 초조한 마음으로 다녔습니다. 그날도 강의를 마치고 사무실 일 걱정으로 시간이 되자마자 마쳤는데 저 뒷자리에 앉은 한 여 선생님이 엎드려 울고 있었습니다. 아픈가 싶어서 까닭을 물었는데, 쑥스럽게도 제 얘기를 듣고 이미 많이 운 상태였습니다. 강의를 어떻게 했기에 그 선생님이 울었느냐 하면, 제가 사회과 교육을 연구하게 된 경위를 덧붙여 하나하나 깨달아 온 과정을 이야기했습니다. 난처했지만 그 선생님의 눈물이 그치기를 기다려 함께 식당으로 갔습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원인 S 선.. 2010. 5.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