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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임종5

정끝별 「세상 가장 작은 뼈에게」 귓속 고막에서 달팽이관 사이 이소골을 이루는 추골, 침골, 등골이라는 가장 작은 뼈들이 가장 나중에까지 듣는다기에 들을 때 속귀의 뼈들이 움직인다기에 임종을 선고한 의사가 나가자 아직 따뜻한 엄마 겨드랑이에 손을 묻고 작은 목소리로 가장 작은 엄마의 뼈들을 어루만지며 엄마 귀에 대고 말했다 엄마, 엄마가 돌아간 시간을 잘 기억할게 엄마도 잘 기억해서 그 시간에 꼭 찾아와야 해 슬픔이란 얼마나 신비로운지. 슬픔도 없다면 무엇을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 보면 더 이야기할 수가 없는 경우가 있다. 들으면 더 이야기할 수가 없는 경우도 있다. 시를 읽고 그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읽으면 더 이야기할 수가 없는 경우가 있다. 『현대문학』 2024년 1월호에서 이 시를 보았다(나민애, 시 격월평 「상실의 시대, .. 2024. 1. 19.
문성란(산문) 「어느 무명 시인에게 배운 것」 시처럼 읽혔다. 잔잔하게 흐르는 물 같은데 긴장감을 느끼게 했다. 의도하지 않았을 듯한 기승전결(起承轉結)이 보이는 것도 신기했다. 떠난 이가 있고 보낸 이가 있고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다. 영영 떠난 이도 보낸 이와 지켜본 이들도 다 행복한 사람들이었다(부러웠다). 지켜본 이 중에는 이 글을 쓴 시인이 있다(늦었겠지, 시인이 아니어도 시인처럼 살아보려고는 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어느 무명 시인에게 배운 것 / 문성란 버스를 기다리면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오래된 습관이다. 티끌 하나 없이 맑은 하늘이 보일 때도 있고, 구름송이를 띄운 하늘이 보일 때도 있고, 더러는 울음을 머금은 것처럼 어둡게 내려앉을 하늘일 때도 있으나 오늘은 빈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시린 하늘이다. 가지에 꽃눈을 움켜쥐.. 2023. 10. 31.
저승 가는 길에 듣는 알람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나는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 침울한 분위기에 자신의 입장을 더해서 두어 명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우지 마라! 울 것 없다! 너를 위해서라면 몰라도 나를 위해서라면 울 것 하나도 없다! 나는 이만하면 됐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서투르고 어색한 채로 마지막 아침이 진행되고 있다. 그때 내 휴대전화기에서 심장약 복용 시각을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7시 40분! 매일 아침 그 시각에 1초도 어김없이 울리는 알람이었지만 그 아침에는 그게 참 엉뚱한 멜로디였다. 그 곡은 아주 단순하고 간단하고 좀 평화로운 느낌의 멜로디가 반복되는 것으로, 그렇게 누워 한두 번, 이어서 서너 번 듣고 있을 때까지는 예전에 아내와 내가 젊은 부부였던 일요일 아침나절 그 동네의 교회 종소리처럼 아늑하.. 2021. 2. 16.
조르주 베르나노스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Ⅱ 조르주 베르나노스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Ⅱ 정영란 옮김, 민음사 2011 한 달이 더 걸려 읽었는데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신부님 일기를 훔쳐보는 것 같아서 때로는 좀 미안해지려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제 이 단순하고 서투르고 촌스럽고 가난한 신부님과 헤어져야 한다는 게 서글픕니다. 이제 어떤 책을 읽어야 이 허전함을 달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신부님 이야기여서 당연히 종교적인데도 취향에 꼭 맞는 책이었습니다. 하루에 한두 페이지씩 읽었습니다. 마치 詩 읽듯했습니다. 해설을 합쳐서 436쪽이니까 한 달 이상 하루에 겨우 한두 페이지를 읽었는데도 온통 이 신부님 日記를 읽는 데 힘을 쓴 것 같은 느낌입니다. 우스울지 모르지만 문장도 시가(詩歌) 같아서 몇 번을 거듭 읽다가 졸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그.. 2012. 2. 12.
오츠 슈이치 『삶의 마지막에 마주치는 10가지 질문』 C일보(2011.11.5)의 책 소개에서 「마지막 길 가려는 이에게 "가지 말라"고 할까, "편히 가라"고 할까」라는 제목을 봤습니다. 책 내용에서 특히 눈길을 끌 수 있는 자극적인 제목을 뽑은 것인 줄은 당장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목만 그런 것은 아니어서 "사회의 변화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죽음의 초보자로 만들었다.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죽음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착각한다."(108)는 내용을 딴 「당신은 TV에서 본 것처럼 죽지 않는다」는 소제목도 충격적이었습니다. 또 있습니다. 「가족도 피가 마른다」 「고독사는 나쁘다고 쉽게 말하지 말라」 같은 소제목도 그 내용이 궁금했습니다. 그 신문은 독자들을 위한 서비스를 확실하게 하겠다는 듯, 웬만큼은 궁금증을 풀 수 있도록 책의 .. 2011. 1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