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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샤갈6

「샤갈의 마을」展(2010 겨울) 2010년 겨울, 「샤갈의 마을」展이 열리고 있었다(2010.12.3~2011.3.27. 서울시립미술관). 그 겨울에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약골이긴 하지만 병원에 간 적 없었는데 한꺼번에 무너져 아팠고, 41년 공직에서 퇴임을 했고, 그런데도 큰일들을 치러야 했다. 그런 중에도「샤갈의 마을」을 볼 수 있었던 건 다행이었다. 샤갈이 그가 사랑한 러시아의 마을을 어떻게 그렸는지,「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김춘수)에 등장하는 그 아낙,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지피는 그 아낙', 혹은 「忍冬잎」(김춘수)에 나오는 저 '이루지 못한 꿈을 가진 인간'의 눈으로 구경할 수 있으면 싶은 마음으로 그림들을 보려고 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좀 소란스럽고 무질서했다. 우리는 이미 돈이 많은 나라니까 좀 소란스럽고 .. 2023. 5. 17.
김보나 「러시아 거리」 러시아 거리 김보나 눈이 내리는 오후, 나는 한 남자와 샤갈의 전시회에 갔다. 젊은 샤갈은 그림 안에서 아내를 안고 마을 위를 비스듬하게 날았다. 평생 사랑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는 샤갈의 해설을 보며, 나는 곁에 선 남자에게 말했다. "로맨틱해요." 남자는 단조로운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예전에 본 그림이라고 했다. 나는 스무 살이고 그는 교수였다. 우리는 '바니타스의 이해'라는 교양 강의에서 만났다. 죽음을 그린 명화를 탐구하는 시간, 프랑스에서 유학한 그는 파리의 카타콤을 거닌 이야기를 꺼냈다. 도심 아래에 숨겨진 지하 묘지가 있고 그곳의 벽은 해골 600여 구로 이뤄져 있다고 했다. 괴테의 말을 불어로 읊기도 했다. "밭도 나무도 정원도 내게는 그저 하나의 공간이었다. 나의 가장 사랑하는 당신이 .. 2022. 7. 4.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김춘수의 詩에 몰두한 적이 있다. 그의 네 번째 시집 『處容 以後』(민음사, 1982)의 표지에는 시인의 얼굴 그림이 있다. 안경을 낀 깡마른 얼굴을 스케치해 준 그 화가는 나중에 자신의 소묘집 『시인의 초상』(지혜네, 1998)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김춘수 선생은 성격 면에서 매우 찬 분이다. 성격이 더운 시인도 있고, 괄괄한 분도 있고, 오종종한 서생(書生)도 있는데, 늘 수면에 얼음 같은 게 떠 있는 분이 선생이다." "김춘수 선생이 어느 하늘 아래(옛날에 바닷가 마산이나, 뜰에 후박나무가 서 있던 대구 만촌동이나, 지금 서울 강남 아파트촌에) 계시다는 것은 마음 훈훈하다." 그러고보면 김춘수의 시에는 그 성격이 잘 드러나 있는 것 같다. 차가움 안에 따듯한 마음, 섬세함이 스며 있다. 샤갈의 .. 2020. 9. 25.
카프카와 샤갈의 만남(상상) 카프카와 샤갈이 잠시 만나도록 해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디서?" 하면 이 사무실 건물 1층 커피숍입니다. 카프카의 장편(掌編) 소설 「회랑 관람석에서」를 읽다가 생각했습니다. 인터넷에서 찾아봤더니 카프카는 1883~1924, 체코 , 샤갈은 1887~1985, 러시아 태생입니다. 카프카는 자신이 샤갈보다 4년이나 먼저 태어났으니까 당연히 '형님'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할 텐데, 그러면 카프카보다 61년이나 더 살게 되는 샤갈은 뭐라고 할지…… 당신들을 초청한 내가 저녁 식사값과 커피값을 낼 테니까 다른 얘기나 하자고 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카프카의 「회랑 관람석에서」는 소설이긴 하지만 헤아려 보니까 딱 네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저 관람석 손님은, .. 2012. 3. 23.
샤갈 Ⅲ (서커스) 지난 3월 27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 와 있던 샤갈이 돌아갔다. 내가 언제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아득해진다. 더구나 세계 여러 나라 여러 미술관에서 먼 길을 왔던 그림들이다. 그를 회상해보면 '사랑'에 관한 그림과 함께 서커스, 성경의 내용을 주제로 한 그림들이 떠오른다. 물론 다른 그림도 많았지만, 그런 그림들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다음은 서커스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다. 전에 어느 미술 교과서에서 본 기억이 있다. 샤갈의 작품 중에서 이 그림을 선정한 이유가 궁금하다. 곡예사의 역동적인 모습을 잘 나타냈다? 아이들 수준에서 보기가 좋다? 그렇다면 아래의 작품은 어떨지…… 곡예사가 머리를 아래로 한 채 물고기처럼 날렵하게 내려오며 세상을 본다. 물고기나 말이나 해와 달이나 수탉이.. 2011. 3. 31.
샤갈의 사랑 '세기의 미녀'로 불리면서 7명의 남자와 여덟 번 결혼했다는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세상을 떠났다. 그 '세기의 미녀'가 출연한 영화 『자이언트』 『클레오파트라』를 본 적이 있다. 한 신문은 1면에는 「세기의 연인 잃다」, 다른 면에는 한 면 가득 「비비언 리, 오드리 헵번도 샘냈던 '할리우드 여신'」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어떤 신문들은 「하늘의 별이 된 지상의 별」 혹은 「사랑을 사랑한 여인」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위의 신문에는 300억 원의 재산을 가진 80대의 오스트레일리아 사업가가 "여생을 함께 보낼 한국 여성을 찾는다"며 신부 후보 공개 모집을 하자('왜 하필 한국 여성?') 첫날에만 1000명이 넘는 여성이 지원했고, 그 중 300여 명은 20~30대 젊은 여성인 것으로 알려졌다는 기사도 실렸고.. 2011. 3.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