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벚꽃6

이제 거들떠보지도 않네 정처(定處)도 의지도 없이 떠내려가고 있었다. 축제가 끝나버려서 사람들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저렇게 떠내려 간 것도 단 나흘 전이었는데 이미 추억은커녕 기억도 아니다. 그날 아침나절 나는 냇물을 따라 걸어내려가고 있었다. 나는 우산은 쓰고 있었다. 2024. 4. 19.
이 아침의 행운 창 너머 벚꽃이 만개한 아침이다. 어찌할 수 없는 상실과 아픔, 지울 길 없는 아픔과 슬픔으로 이어져 온 생애의 기억들이 안개 걷히듯 사라지는 느낌이다. 꽃그늘을 걷는 사람들 표정이 먼 빛으로도 밝고, 문득 이 아침이 행운임을 깨닫는다. 이런 시간이 행운이 아니면 그럼 언제 어디에 행운이 있겠나. 2024. 4. 9.
역시 덧없는 봄 눈 온 듯했다. 올봄은, 어제까지의 봄은 정말이지 무슨 수나 날 것 같았다. 끝까지 치솟을 것 같았고, 끝이 없을 것 같았고, 올해만큼은 이제 여름도 가을도 없을 것 같았다. 그러던 그 봄이 하룻밤 새 다 떨어져 무참히 깔려버렸다. 이제 이 허전한 봄을 어떻게 보내나... 덧없다. 이런 걸 가지고 덧없다, 속절없다 했는가 보다. 2023. 4. 5.
벚꽃잎 떨어져 사라져가는 봄날 일본 정신의 뿌리와 그 정체성을 찬양하기 위해 《무사도》(양경미·권만규 옮김, 생각의나무 2004)라는 책을 쓴 니토베 이나조(新渡戶稻造)는 그 책의 마지막을 비장하게, 서정적으로 다음과 같이 끝냈다. 무사도는 하나의 독립된 도덕의 규칙으로서는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힘은 지상에서 소멸하지 않을 것이다. 그 무용(武勇)과 문덕(文德)의 교훈은 해체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광명과 영광은 폐허를 뛰어넘어 소생할 것이 틀림없다. 그 상징인 벚꽃처럼 사방에서 부는 바람으로 꽃잎이 흩날려도 그 향기로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인류를 축복할 것이다. 백 년 뒤, 무사도의 관습이 사라지고 그 이름조차 잊혀지는 날이 올지라도 "길가에 서서 바라보면" 그 향기는 보이지 않는 머나먼 저편 언덕에서 바람과 함께 .. 2023. 4. 4.
벚꽃잎이 눈보라처럼 흩날리던 날 지난 13일 수요일, 겨우 사흘 전이었군요. 벚꽃잎이 휘날렸습니다. 눈 같았습니다. 바람 부는 날 첫눈 같았습니다. 벚꽃은 해마다 사람을 놀라게 합니다. 이제 놀라지 않아도 될 나이인데도 실없이 매번 놀라곤 합니다. '아, 한 가지 색으로 저렇게 화려할 수 있다니!' 그 꽃잎들이 아침부터 불기 시작한 세찬 바람에 속절없이 떨어져 마구 날아다녔습니다. 벚꽃잎들이 그렇게 하니까, 재활용품 수집 부대 속에 있던 페트병과 비닐봉지들도 튀어나와서 덩달아 날아다니고 함께 데굴데굴 굴러다녔습니다. 집을 나서서 시가지(다운타운)로 내려가는데 저 편안한 그네에는 몇 잎 앉지 않고, 그네가 싫다면 그냥 데크 바닥에 앉아도 좋을 텐데 하필이면 비닐창에 힘들여 매달린 것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개울을 따라 내려가는 길에도 물 .. 2022. 4. 16.
벚꽃이 피었다가 집니다 그 동네는 어떻습니까? 이 동네에선 엊그제 벚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오일장날 난전의 '펑튀기'가 떠올랐습니다. 깔깔거리고 웃던 아이들도 생각났습니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께서 "시끄럽지요?" 하고 묻길래 "아이들이니까요. 나 같은 노인은 떠들지도 못해요" 했더니 "그래도 교장실 옆이어서 신경이 쓰이는 걸요" 해서 "교장은 하는 일이 없어서 상관없어요" 했는데 선생님은 예쁜 미소를 지으며 돌아서서 나갔습니다. 지금 그 선생님은 또 꽃 같은 아이들을 데리고 어떤 교장과 이야기하고 있을까요? 괜히 또 옛 생각 때문에 이 글도 '또' '괜히' 길어질 뻔했네요. 엊그제 그렇게 피기 시작한 것 같은 벚꽃은 어제는 어찌할 도리가 없을 정도로 만개하고 있었습니다. 한꺼번에 그렇게 피어나면 세상의 그 누구도 어떻게 할.. 2019. 4.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