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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믿음5

두려움 소설 《장미의 이름》(움베르토 에코,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1994)에서 교황 요한 22세의 사절단장 베르나르 기가 황제의 사절단 일행, 수도원장과 수도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살인 혐의로 수도사 레미지오를 문초하는 장면은 584쪽에서 617쪽까지이다. 이 34쪽을 단숨에 읽었다. 두려웠다. 이른바 믿음을 가진 사람이, 더구나 아무리 후세에 비난을 받았다 해도 교황이라는 사람의 '바로 아래'에서 혹은 '옆'에서 하느님을 입에 달고 살아갔을 고위 성직자가, 이렇게 잔인하고 악독할 수도 있을까? 혹 그런 직위에 있으면 하느님이 '있으나 마나' 하다는 걸 훤하게 알아서 두려움 같은 게 사라지는 걸까? 아니, 이건 소설이지? 그럼 움베르토 에코의 마음속에 이런 잔인함, 악독함이 스며 있었던 걸까?…… 나는 성.. 2023. 7. 9.
가이 해리슨 《사람들이 신을 믿는 50가지 이유》 가이 해리슨 《사람들이 신을 믿는 50가지 이유》 윤미성 옮김, 다산북스 2012 만약에 내 기도가 이루어질 수 있다면, 나는 알 카에다 사람들이 모두 이 책을 읽고 자기들의 신앙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아서 다시는 신의 이름으로 살인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게 되기를 빌고 싶다. 그리고 백만장자인 텔레비전 목사들이 "신이 필요로 한다."는 이유를 들이대면서 힘들게 일하고 낮은 임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돈을 끌어가는 짓을 그만하기를 빌고 싶다...... 이런 이야기들이다. 1부 신은 실제로 존재한다. 1. 나의 신은 분명히 존재한다. 2. 믿음은 좋은 것이다. 3. 이 세상 사람 대부분이 신앙심을 갖고 있다. 4. 무신론도 하나의 종교이다. 5. 신성한 경전이 나의 신을 증명한다. 6. 심판은 신의 존재를 증명한.. 2022. 3. 5.
"보지 않고도 믿고…" 1 상인들 중 장난기가 있고 재치 있는 사람이 돈키호테와 주고받은 대화입니다.1 "기사님. 저희들은 기사님께서 말씀하신 그 훌륭한 여인이 누군지 모르겠습니다. 그분을 좀 보여주십시오. 그분이 정말로 기사님께서 표현하신 대로 아름답다면 기사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기꺼이 고백하겠습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그녀를 보여준다면 그렇게 분명한 사실을 고백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중요한 것은 그녀를 보지 않고도 믿고, 고백하고, 확신하고, 맹세하고, 받들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정녕 너희들이 맹세하지 않는다면 나와 결투를 벌여야 할 것이다. 기사도에 따라 한 사람씩 덤벼도 좋고, 너희 같은 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못된 관습이나 습관대로 한꺼번에 덤벼도 좋다. 어쨌거나 나는 나의 신념에 따라 여기에서 너희들을 상대.. 2019. 1. 23.
한 개의 시계, 여러 개의 시계 Ⅰ 시계가 하나뿐일 때는 그 시계가 가리키는 시각에 대해 절대적인 신뢰를 가졌습니다.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세상에는 그 시계가 가리키는 시각만 존재하는 것처럼, 그 시각이 표준시각이 아닌 '가짜 시각'일 것이 뻔한데도 시계를 바라볼 때마다 '아, 벌써 11시 35분이 넘어가는구나!' 하며 거의 분 단위까지 그 시계에 의존했습니다. 그러다가 시계가 흔해져서 이 방에도 시계, 저 방에도 시계…… 방방이 시계를 걸어두게 되었고, 화장실에도 전화와 시계 등의 기능을 갖춘 무슨 기기가 붙게 되었으며, 컴퓨터 화면도 늘 시각을 표시해 주는데도 이 컴퓨터 옆에까지 시계를 두었고, 서장, 진열장 안에도 탁상용 시계를 넣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구석에 쌓아둔 책 더미 위에도 시계를 얹어 두게 되었습니다.. 2015. 3. 29.
엔도 슈사쿠(遠藤周作) 『침묵』 엔도 슈사쿠(遠藤周作), 『침묵』 공문혜 옮김, 홍성사 1982 Ⅰ 패션 잡지 『엘르』의 편집장 장 도미니크 보비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오직 왼쪽 눈꺼풀만 움직일 수 있는 신세가 되었더랍니다. 내 친구 블로거(자훈)가, 그 장 도미니크 보비가 쓴 실화라며 『잠수복과 나비(Le Scaphandre et le papillon)』라는 책을 소개했습니다. 그 책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답니다. “내가 만일 나의 지적 잠재력이 시금치나 당근의 지적 능력보다 월등하게 우수함을 증명하고자 한다면, 의지할 데라고는 나 자신밖에 없다.” “목욕의 즐거움을 상기할 때만큼 현재의 내 상태가 비참하게 느껴지는 순간은 많지 않다.” 내 친구 블로그의 『잠수복과 나비』로 바로가기 http://blog.daum.net/lipok/1.. 2013. 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