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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고독10

"라스티냐크, 끝까지 갈게! 몰락한 고리오라도 괜찮아..." 문득 돌아보니까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알베르 까뮈가 이야기한 라스티냐크가 생각납니다. 이게 누구지 싶어서 고골리의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라스티냐크처럼 살았냐고 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고골리 영감? 그럴려고 그런 건 아니지만 그렇게 되었습니다. 나는 괜찮습니다. # 알베르 까뮈로부터 * 분명, 사람들이 유럽의 대도시 속으로 찾으러 오는 것은 바로 저 타인들 한가운데에서의 고독이다. 최소한, 인생에 어떤 목적을 둔 사람들은 말이다. 거기서 그들은 그들의 교제를 선택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혹은 버릴 수 있다. 호텔 방과 일르 생 루이의 오래된 돌들 사이를 오가면서 얼마나 많은 정신들이 누그러졌는가! 거기서 고독으로 죽어 간 사람들도 있는 게 사실이다. 어쨌거나, 전자에 관해서 말하자면, 그들은 그.. 2021. 5. 6.
외롭게 살려고 온 사람 1월 말이었지? 한 종편 방송에 70년대 가수가 보였다. 애절한 저음으로 작별(作別)에 관한 노래들을 부르던 가수. 쓸쓸히, 그렇지만 괜찮다는 듯 자신의 인생을 토로하고 있었다. 공학자(工學者)였던 아버지는 월북했고, 어머니는 누나를 데리고 아버지를 찾으러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고, 자신은 동생과 함께 외가에 남았는데 그 동생마저 일찍 죽었다고 했다. 부모에 대한 기억은 전무(全無)하다고 했다. 작별에 관한 노래로 한 시절을 풍미한 이가 저런 사연을 가지고 있었구나 싶었는데, 지금은 아내와도 이혼하고 지인이 제공해준 소규모의 목조 '공간'에서 기거하고 있었다. '공간', 그 거처를 집이라고 부르기에는 아무래도 적절하지 않아서 나는 한동안 그의 인터뷰를 듣지도 않고 '저 거처는 그저 공간(空間)이라고 불러야.. 2019. 3. 3.
죽을 만큼 지겨운가? 1 『시지프의 신화』(알베르 카뮈)에서 죽음(자살)에 이르게 되는 인간이 부조리를 느끼게 되는 시점이 생각났다. 갖고 있는 몇 가지 번역본에서 그 부분을 찾아보았다. 어느 것이 충실한지 보려고 한 것은 아니고, 다만 그 '시점'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었다. # 1 우연히 무대 장치들이 무너지는 수가 있다. 기상·전차·사무실 혹은 공장에서의 네 시간, 식사·전차·네 시간의 일·식사·잠, 그리고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그리고 토요일, 똑같은 리듬에 따라, 이 길을 거의 내내 무심코 따라간다. 그러나 어느 날 〈왜〉라는 의문이 솟고, 그리하여 모든 것이 당혹감 서린 지겨움 속에서 시작된다. 〈시작된다〉―이것이 중요하다. 지겨움은 어떤 기계적인 생활의 행위들 끝에 오는 것이지만,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2019. 2. 19.
박상순 「내 봄날은 고독하겠음」 내 봄날은 고독하겠음 박 상 순 의정부에 갔었음. 잘못 알았음. 그곳은 병원인데 봄날인 줄 알았음. 그래도 혹시나 둘러만 볼까, 생각했는데, 아뿔싸 고독의 아버지가 있었음. 나를 불렀음. 환자용 침상 아래 거지 같은 의자에 앉고 말았음. 괜찮지요. 괜찮지. 온 김에 네 집이나 보고 가렴. 바쁜데요. 바빠요, 봐서 뭐해요. 그래도 나 죽으면 알려줄 수 없으니, 여기저기, 여기니, 찾아가보렴. 옥상에 올라가서 밤하늘만 쳐다봤음. 별도 달도 없었음. 곧바로 내려와서 도망쳐 왔음. 도망치다 길 잃었음. 두어 바퀴 더 돌았음. 가로등만 휑하니 내 마음 썰렁했음. 마침내 나 죽으면 알려줄 수 없는 집, 여기저기 맴돌다가 빠져나왔음. 의정부에 다시 갔음. 제대로 갔음. 길바닥에 서 있었음. 내 봄날이 달려왔음. 한때.. 2016. 4. 7.
"열심히들 적는군" "열심히들 적는군" 2○○○년 □월, ○○○ 장관은 물러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딸만 셋인 그는 퇴임 직후 미국에서 음악을 전공하는 딸의 연주회에 참석하기 위해 비행기 표까지 끊어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장관 후보로 예정됐던 ◇◇◇이 갖은 구설에 휘말리며 국회에서 의원들의 호된 .. 2015. 10. 25.
장 자끄 상뻬 『얼굴 빨개지는 아이』 장 자끄 상뻬 글·그림 『얼굴 빨개지는 아이』 김호영 옮김, 열린책들 별천지 2009 초등학교 졸업 때였습니다. 중학교에 가려면 호적초본인가 뭔가를 떼어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면사무소는 6년간 오르내린 학교 앞 도로변에서 빤히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그곳에 들어갔는데, 그걸 떼는 건 예상외로 아무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건물 계단을 내려오며 주루룩 눈물을 흘렸고, 그러다가 자칫하면 굴러떨어질 뻔했습니다. 그런 아이였던 내가, 이렇게 뻔뻔해졌습니다. 웬만해선 눈도 깜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아직 멀었다는 것입니다. 저들과 상대하고 저들을 누르려면 아직 멀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왜 이런지, 겉으론 이렇게도 뻔뻔하고, 이렇게 뻔뻔한 척밖에 못하는 것인지, 아이들이나 볼 것.. 2014. 9. 24.
내 곁을 서성거리는 고독 (2014.1.16.목) 자잘한 것들이지만 다행한 일, 잘된 일이 거듭된 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저녁에는 적막하고 고독하다는 느낌에 젖어 있습니다. 이런 날이 처음인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는 당연히 더 자주 있을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이처럼 고독한 날이 다가오는 걸 미리 알고 기다리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깁니다. 또한, 이런 날들이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긴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스스로 이런 날들을 즐기게 된 것을 참으로 고맙게 여깁니다. ♬ 아내가 모처럼 건강검진을 받은 날입니다. 그러니까 오늘의 '주제'는 '아내의 건강검진'이었다고 하면 될 것입니다. 다른 일정은 잡지 않았고, 오후에는 그냥 쉬기만 하면 되는 걸로 정했습니다. 아내가 건강검진을 제대로 받아본 것은 7, 8년은 되었습니다. 그동안 마음 편히 .. 2014. 1. 19.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 동안의 고독』Ⅱ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 동안의 고독』 이가형 옮김, 하서, 2009 1 '다시 읽고 싶은 책'이라고 해서 '교육학 개론'이나 '인간이란 무엇인가?' 같은 거창한 것도 아닙니다. 그럴 것 없이 한 권만 예를 들면 최근에 읽은 『백년 동안의 고독』 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 책은 우선 흥미진진한 소설입니다. 정말인지 몰라도 그 책의 띠지에는 이런 문구도 있습니다. ―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타임즈, 미국대학위원회 추천 도서 ― THE TIMES 선정 '세계를 움직인 책' ― "책이 생긴 이래 모든 인류가 읽어야 할 첫 번째 문학작품!"(뉴욕 타임즈)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명석함, 재치, 지혜, 시상詩想은 백 년 동안 배출되어 온 소설가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워싱.. 2013. 7. 10.
프란츠 카프카 『변신』 Ⅱ 프란츠 카프카 『변신·시골의사』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9 만약, 내일 아침에 일어나보니까 자신이 한 마리 벌레가 되어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프란츠 카프카는 충분히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변신』이라는 소설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소설에는 아무리 뜯어봐도 전혀 비논리적이거나 허황된 설명을 한 부분이 없습니다. 외판원 그레고르 잠자라는 인물은, 어느 날 아침 자신이 한 마리 벌레, 거대한 새우1처럼 등은 껍질로 되어 있고 수많은 발이 돋아난 그런 벌레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럴 수가 있을까?' 싶다면, 전혀 거짓이 아니라는 걸 이 소설을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 지난번에 좀 인용했으므로 이번에는 여동생 그레테가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에게 어떻게 대하는지 보십시오. 누이.. 2012. 3. 18.
향수(鄕愁) 「추억은 혼자 분주하다」(『강변이야기』, 2011.3.16. 내 마음의 풍경) 중에서 이 길로 가면 저 외딴집에 이르게 됩니까? "그렇지 않다"고 하셔도 괜찮습니다. 다른 곳에 이르른다 해도 그곳도 괜찮기 때문입니다. 아직 그리워할 사람이 없었을 때, 세상에 그리운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조차 몰랐던, 좋은 시절에는, 저도 저 길을 다녔습니다. 어디로 간다 해도 좋은 길…… 이제 나이들어 그 길이 그립습니다. 그리워졌습니다. "해질녘/강가에 서면/더욱 막막할 뿐//더욱 더 깊어질 뿐" 그렇지 않아도 이미 '나는 이제 막막하구나, 막막해졌구나, 점점 더 막막해지는구나' 싶었는데, 찬찬히 읽고, '막막함'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막막해지는 것이 아닌가 싶어집니다. 그 막막함이란 어.. 2011. 3.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