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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그림과 사진

향수(鄕愁)

by 답설재 2011. 3. 22.

「추억은 혼자 분주하다」(『강변이야기』, 2011.3.16. 내 마음의 풍경) 중에서

 

 

 

이 길로 가면 저 외딴집에 이르게 됩니까? "그렇지 않다"고 하셔도 괜찮습니다. 다른 곳에 이르른다 해도 그곳도 괜찮기 때문입니다.

아직 그리워할 사람이 없었을 때,

세상에 그리운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조차 몰랐던, 좋은 시절에는,

저도 저 길을 다녔습니다. 어디로 간다 해도 좋은 길……

이제 나이들어 그 길이 그립습니다. 그리워졌습니다.

 

"해질녘/강가에 서면/더욱 막막할 뿐//더욱 더 깊어질 뿐"

 

그렇지 않아도 이미 '나는 이제 막막하구나, 막막해졌구나, 점점 더 막막해지는구나' 싶었는데,

찬찬히 읽고,

'막막함'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막막해지는 것이 아닌가 싶어집니다.

그 막막함이란 어디에서도 마찬가지이고,

무엇을 한다 해도 그렇고,

사람들을 만난다 해도 헤어지면 또 막막하고,

…………

 

그렇다면, 언젠가는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털어놓고 막막하다고 해버리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그 '막막함'이나 '아득함'이 차라리 얼마나 편한 것인가, 그런 생각도 합니다.

도시로, 또 다른 도시로,

그리워하지도 않았던 곳을 찾아다니며 목숨을 걸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돌아가자 해도 그곳은 사라졌습니다.

어차피 막막할 것이라면 저렇게 좋은 길을 찾아나서지 않아도 마찬가지이므로

그냥 여기서 막막해하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것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세상에 그리운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조차 몰랐던 좋은 시절에는,

그 막막한 시절에는,

마을 앞 못가에 앉아서

저런 물살을 바라보기도 했었습니다.

사실은 아직 아무것에도 마음 준 적이 없을 때였습니다.

 

그때 그 막막함이 그립습니다. 눈물나게 그립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막막해도 괜찮다고 여기며 지냅니다.

 

알제리에서 태어난 프랑스 작가 알베르 까뮈는 그곳 오랑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 오랑의 누런 벽들을 넘어서, 육지와 바다는 그들의 무심한 대화를 계속한다. 세계 속의 그러한 영구불변함은 인간에겐 언제나 서로 어긋나는 매력들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인간을 절망으로 몰아가기도 하고 흥분시키기도 한다. 세계는 결코 단 한 가지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우선은 세계는 흥미를 갖게 하고, 그 다음엔 지루하게 만든다. 그러나 결국에는 집요함의 힘으로 세계가 이긴다. 세계는 언제나 옳은 것이다.

오랑으로 들어가는 바로 성문들에서, 자연은 이미 그 어조를 높인다. 카나스텔 방향으로는, 향기로운 덤불로 뒤덮인 거대한 황무지가 있다. 거기서 태양과 바람은 오직 고독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

 

 

 

.......................................

* 알베르 까뮈, 「미노토르─오랑에서의 체류」 중에서, 민희식 옮김, 『시지프스의 신화』(육문사, 1993), 2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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