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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고갱6

서머싯 몸이 이야기한 기이하고 환상적인 그림 「무엇을 그린 그림입니까?」 내가 물었다. 「글쎄요. 아무튼 기이하고 환상적이었어요. 이 세상이 처음 생겼을 때의 상상도랄까. 아담과 이브가 있는 에덴 동산 같은 거였어요. 뭐랄까, 인간의 형상, 그러니까 남녀 형상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이기도 하고, 숭엄하고 초연하고 아름답고 잔인한 자연에 대한 예찬이기도 했어요. 그걸 보면 공간의 무한성과 시간의 영원성이 섬뜩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사람이 그린 나무들은 매일 주변에서 보는 야자수며 반얀이며 홍염화며 아보카도 나무열매 같은 것들이었는데, 그 때문에 그 그림을 보고 난 뒤로는 나무들이 영 달리 보이더군요. 마치 거기에 잡힐 듯 잡힐 듯하면서도 영원히 잡히지 않는, 무슨 영혼이나 신비가 숨어 있는 것처럼요. 색채깔들은 눈에 익은 색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달.. 2020. 12. 10.
서머싯 몸이 설명한 과일 그림 베란다에서 진찰실로 통하는 문간에서 그는 잠시 발을 멈추고 빙긋이 웃었다. 「과일을 그린 정물화입니다. 의사에 진찰실에 별로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라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집사람이 응접실에는 절대 걸어놓을 수 없다고 하지 뭡니까. 너무 외설스럽다나요.」 「정물화가 말입니까?」 나는 놀라서 소리쳤다. 방에 들어갔다. 금방 그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한참 동안 그림을 바라보았다. 망고, 바나나, 오렌지, 그 밖의 이름 모를 과일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그림이었다. 언뜻 보면 조금도 이상할 데가 없는 그림이었다. 무심한 사람이라면 후기 인상파의 전람회 같은 데서, 잘 그렸긴 하지만 이 유파를 대표할 만한 작품은 못 된다고 여기고 그냥 지나치고 말 그런 그림이었다. 하지만 나중에도 자꾸 그 그림이 기억에 떠올.. 2020. 12. 7.
그리운 타히티 섬 육신을 가진 인간이라면 타히티에 가까이 갈 때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도 정말 공상 속의 황금 왕국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타히티의 자매섬인 할 무레아 섬은 마법 지팡이가 만들어낸 허깨비처럼, 장엄한 바위섬의 모습을 망망한 바다 위에 신비롭게 드러낸다. 들쭉날쭉한 윤곽이 태평양의 몬트서래트 섬과 흡사하다. 거기에서는 폴리네시아 기사(騎士)들이 기이한 의식을 올리며 사람들이 알아서는 안 되는 신성한 비밀을 수호하고 있을 것만 같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멋진 봉우리들이 점점 뚜렷해지면서 섬의 아름다움은 그 베일을 벗는다. 하지만 배가 곁을 지날 때에도 섬은 아직 비밀을 드러내지 않은 채, 침범을 허용치 않으려는 듯 다가가기 힘든 험준한 바위들로 자신을 엄중히 감싸고 있는 듯하다. 산호초 사이로 겨.. 2020. 12. 4.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송무 옮김, 민음사 2013(1판 54쇄) 「스트릭랜드를 사로잡은 열정은 미를 창조하려는 열정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마음이 한시도 평안하지 않았지요. 그 열정이 그 사람을 이리저리 휘몰고 다녔으니까요. 그게 그를 신령한 향수(鄕愁)에 사로잡힌 영원한 순례자로 만들었다고나 할까요. 그의 마음속에 들어선 마귀는 무자비했어요. 세상엔 진리를 얻으려는 욕망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들이 있잖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진리를 갈구하는 나머지 자기가 선 세계의 기반마저 부숴버리려고 해요. 스트릭랜드가 그런 사람이었지요. 진리 대신 미를 추구했지만요. 그 친구에게는 한없는 동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어요.」(276~277) 증권 브로커 스트릭랜드는 돌연 가정을 '탈출'합니다. 전혀 내색하지 않고 지.. 2020. 11. 30.
고갱,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이 파일은 2013년 9월 25일에 탑재한 것이었습니다. 최근에 보니까 글자가 희미하고 편집이 하도 어수선해서 열람하시는 분들에게 미안했습니다. 그런데도 각주가 있는 파일은 수정이 불가능해서 점 하나도 고칠 수 없게 되어 있으므로 아예 삭제해 버릴까 생각하다가 새로 탑재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유치한 말이 눈에 띄지만 단어 하나 고치지 않고 그 당시의 생각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 당시의 댓글과 답글은 아래에 모아 옮겨두고, 새로운 댓글란은 두지 않았습니다.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2020. 9. 7.
Thank you, Gauguin !!! 우리는 어디서 왔고, 무엇을 하고, 어디로 가나? 폴 고갱은 파리 사람인데, 아버지를 따라 페루로 이민을 갔다. 그는 배 안에서 아버지를 잃고 다섯 살 때까지 리마에서 살았다. 프랑스로 돌아와 스물네 살에 증권거래소 직원이 되었다. 이듬해 결혼을 했고, 애들을 다섯 낳았다. 서른다섯에 증권사를 그만두고, 그림을 그렸다. 먹고살기가 힘들었다. 그는 처가 있는 코펜하겐으로 갔다. 그러나 곧 처자식들과 헤어져 파리로 돌아왔다. 마흔세 살 때 남태평양 타히티로 향했다. 두 달 항해 끝에 도달한 파페에테는 술에 찌든 사람들의 황량한 땅이었다. 그는 마타이에아로 옮겼다. 거기서 건강한 원주민들의 삶과 만났다. 가난과 고독이 그를 괴롭혔다. 2년 뒤 그는 귀국했다. 그동안 그린 그림들을 전시했다. 상업적으로 성공을 .. 2014. 3.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