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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열차 옆자리의 미인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애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雪國』은 이렇게 시작되고, 그 첫머리에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옵니다(가와바타 야스나리, 유숙자 옮김, 『설국』 민음사, 2014, 1판51쇄, 10~11). 벌써 세 시간도 전의 일로, 시마무라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왼쪽 검지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여 바라보며, 결국 이 손가락만이 지금 만나러 가는 여자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군, 좀더 선명하게 떠올리려고 조바심치면 칠수록 붙잡을 길 없이 희미해지는 불확실한 기억 속에서 이 손가락만은 여자의 감촉으로 여전히 젖은 채, 자신을 먼데 있는 여자에게로 끌어당기는 것 같군, 하고 신기하게 생각하면서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보기도 하고 있다가, 문득 그 손가락으..
2014. 4.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