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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4

늙어가기 Ⅰ 일요일 새벽은 부지런한 이웃 주민이 폐품을 정리하는 소리로 시작됩니다. 그 순간에 부스스 잠을 깹니다. 이 아파트의 우리 동(棟)은 앞과 옆이 열려 있어서 이웃 주민들이 오르내리는 길이 훤히 보이고 그 길가에 재활용 분리수거함들이 놓여 있습니다. 빈 병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 일요일 새벽이구나. 그새 또 일주일이 지나가다니……' 그렇게 생각하는 일요일 새벽의 기억들은 쉽게 겹쳐지기 때문에 지난 일주일이 무슨 파노라마처럼 떠오르는 경우는 거의 없고 그저 텅 빈 시간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세월이 빨리 흐른다는 느낌은 그래서 더욱 절실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Ⅱ 순간(瞬間), 순식간(瞬息間).1 처음에 이 말을 만들어낸 사람도 나와 같은 경험으로써 이 말들을 .. 2015. 8. 19.
위로 Ⅰ 9호선 신논현역의 교보문고에 갈 때는 이 그림 앞을 지나갑니다. 아주 많은, 갖가지 모습을 보여주는 여러 사람들 중의 두 사람들입니다.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어렴풋이 '늦었지만 나도 이제는 남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이게 뭔 소리야? 그럼, 겨우 몇 푼 기부하던 건? 대놓고 파렴치하게 살겠다는 거야?" 그런 비난이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유치한 얘기지만, 매달 자동이체로 나가는 돈은 그대로 결제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것에도 남을 돕는다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건지 의문입니다. 그러니까 겉으로는 아무런 차이가 드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표가 난들 얼마나 나겠습니까? 누구를 태우고 자시고 할 형편도 아닌 고물 자동차 한 대뿐인데…….. 2015. 2. 21.
이 허접한 욕심 Ⅰ 나이가 나보다 좀 적은 편인 지인이라면,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잘 있었는지 확인하고나면 매우 어색해 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특별한 화제도 없고 해서 인사삼아 더러 이렇게 묻기도 합니다. "운동도 좀 하십니까?" "아직 죽지 않았네요?" 하고 인사하기는 난처해서 "더 살려면 이제라도 운동을 좀 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고 싶은 걸 그렇게 묻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하기야 만나도 탈 날 일은 없지만 영영 만나지 않아도 하나도 궁금하지 않을 사이에는 그동안 궁금해서 죽는 줄 알았다고 할 수도 없고, 반대로 "아직까지 살아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친근한 척 하려고 해도 최근의 나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으니까 그렇게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내용을 묻고 답하며 .. 2015. 2. 10.
"할아버진 좋겠어요, 게임도 맘대로 할 수 있고…" 며칠 전 비오는 날 오후, 저 녀석이 나를 찾아왔습니다. 대체로 집에서 만나다가 모처럼 사무실에 있는 나를 보고 신기해했고, 이것저것 묻는 것도 많아서 한참 대답했습니다. 녀석이 다섯 살 때였던가, 내 대신 잠깐만 교장을 좀 해보고 싶다고 해서 그럼 그러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막상 학교에서 만나기로 한 날이 다가오니까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선생님들이 어려운 걸 물으면 어떻게 하죠?"("내가 옆에서 작은소리로 다 가르쳐 줄게.") "작다고 깔보는 선생님들도 있을 텐데……"("작아도 아주 똑똑해서 모르는 게 없다고 할게.") 그러나 녀석은 그 의자에 앉자마자 "도저히 안 되겠다"며 당장 일어섰기 때문에 '교장 대행'은 순간적인 해프닝이 되고 말았습니다. ♬ 녀석의 교장 대행 요청에 "그러라"고 한 것은.. 2013. 6.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