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전화를 받고 "여보세요?" 하지 말라는 연락을 받았다. 처음에는 링크만 와서 순간 '이걸 열어보라고?' 싶었는데 곧 내용을 요약한 문자 메시지도 와서 링크를 열어봤더니 문화일보에 난 기사였다.

"여보세요?" 한마디만 하면, AI가 내 목소리를 흉내내어 가족도 속아 넘어가는 보이스피싱에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AI로 말하면, 못하는 일이 거의 없게 되어가는 것 같다.
곧 가짜인간이 나오겠지. 이미 나와서 거리를 활보하는데 내가 모르는 것 아닐까?
아직은 아니겠지만, 곧 사람들은 '저 사람은 사람일까, 가짜일까?' 의심하며 바라보게 되고, 진짜 사람과 가짜 사람을 능숙하게 구분하는 사람이 있고, 가르쳐줘도 구분하지 못하는 우둔한 사람도 있게 되겠지.
그런 소설은 이미 쏟아지고 있다.

나는 복제 노동자다. 원인간인 이경희가 스킨폰 공장에 입사할 때 자신을 복제해도 좋다고 서명한 결과다. 복제 허가서에 사인하지 않으면 입사할 수 없으니 내 존재는 경희의 선택이라기보다 반강제인 셈이다. 원인간이 일을 하다 죽는 경우, 공장에서는 사망신고를 하지 않는다. 가족이나 친지에게 알리지도 않는다. 복제 노동자가 원인간의 삶을 이어 산다. 복제 노동자는 원인간의 외형과 성향, 기억을 물려받아 원인간이 하던 일을 지속한다. 복제 노동자의 삶도 그리 길지는 않아서, n번째 복제 노동자가 다시 일을 하다 죽으면 n+1번째 복제 노동자가 다시 바통을 이어받는다. n+1번째 복제 노동자가 n번째의 삶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삶의 방향을 다소 바꿀 수도 있다. 유리는 내가 네 번째 유리의 절친이었다는 걸 알고 있고, 나와 함께 점심 식사를 해왔던 것도 기억하고 있고, 네 번째 유리와 내가 식당 정문에서 열두 시에 만나기로 약속한 것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약속을 어기고 혼자 식사하는 쪽을 선택했다. 순응과 개척 중 개척을 선택한 경우다. 그건 전적으로 다섯 번째 유리의 선택이므로 그녀의 마음을 되돌릴 방도를 찾지 못한다면 나로서는 상황을 그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한숨을 쉬며 애넛을 씹고 있는데 식당 창문 밖으로 다섯 번째 유리가 지나간다. 다섯 번째 유리는 작업복 소매를 걷어붙이고 한 손에는 휴대용 에어 컨디셔너를 들고 있다. 더위를 타는 건 여전한 모양이다. 다섯 번째 유리가 올여름을 무사히 보내기를 바랄 뿐이다. 유리와 나 사이는 완전히 끝났다.
어젯밤에 네 번째 유리와 나누었던 대화창의 내용을 다시 확인했다. 유리는 여름을 처음 겪기 때문에 날씨가 더워진다는 것에 대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최정화의 단편소설 「열한 번째 경희」(《현대문학》2023년 5월호)에서 가짜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알아볼 수 있는 부분을 옮겨썼다.
온갖 일들이 벌어지겠지?
가짜인간이 진짜행세를 하기도 하고, 가짜만도 못하다고 핀잔을 듣기도 하겠지?
차라리 가짜가 낫겠다고 가짜로 변신해버리기도 하겠지?
실제로 가짜가 나를 더 잘 이해해 주는 인간이어서 그 가짜와 정을 나누고, 그 가짜에게 모든 걸 거는 사람도 있겠지?
이 집은 진짜 몇 명, 가짜 몇 명으로 이루어진 가족이고 대표는 누구, 부대표는 누구, 이런 식으로도 살아가겠지? 가짜도 세금은 내겠지? 좀 적게 내려나?
가짜도 병이 들고 병원에 가고 하겠지만 진짜와 다른 병원이겠지?
지금 우리가 고민하는 일들이 그때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되어버리고, 새로운 고민거리가 쏟아져 나오겠지?
이런 생각들을 하면 여기에 얼마든지 더 쓸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책을 보니까 인간은 가짜인간(로봇)들에게 사육당한다는데 얼마 전 일본의 기업인이 우리나라에 와서 우리는 금붕어 신세(?)가 된다고 했다.
우습다는 생각도 들고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신(神)처럼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도 하고 지금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고도 했다. 내가 가슴속에 스턴트를 박아 넣어 십육 년째 더 살고 있는 것도 그런 사례일까? 뭐 아니라고 할 것도 없겠지.
확실한 건, 어느 날 돌연 그런 세상이 오는 건 아니고 차츰 그렇게 되어가는 것이겠지. 지금 한창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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