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요즘 자주 미하엘 엔데의 길고 긴 동화 《끝없는 이야기》를 생각한다. 이제 그만 생각해도 좋겠는데 싶어도 뉴스 시간에 세상을 바꾸어 보려는 힘센 지도자들 이야기가 나오면 그 이야기와 이야기 속 '여린 여왕'이 생각나고, 잊을 만하면 또 생각나게 하는 일이 생기고 하니까 잊을 수가 없게 되고 말았다.
환상 세계는 그야말로 온갖 것들이 다 있는 세상이다. 환상 세계를 다스리는 '어린 여왕'이 병이 났을 때, 궁전 구역 목련 정자 아래 상아탑에 500명의 의사들이 모여들었다는 얘기 속에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것들만 적어 봤는데 대충 다음과 같았다. 하얀 수염에 곱사등을 한 난쟁이 의사, 머리에 반짝이는 별을 단 요정, 물의 정령, 흰 뱀, 벌의 요정, 마녀, 흡혈귀, 유령, 불의 정령, 늙은 까마귀, 잉크맨, 뿔풍뎅이, 귀신, 도깨비불, 소인(小人), 밤의 요정, 바위베어먹기, 카이론(켄타우로스)…
나는 마침내 내가 꿈을 꾸는 것도 환상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어젯밤에는 내가 어떤 기관에 근무할 때의 이야기였는데 웬 아름다운 여인이 나를 잘 안다면서 그 건물 출입구를 시원하고 말끔하게 청소하는 꿈을 꾸었다. 새벽에 꿈에서 나와 생각한 것은 이제 내 환상 세계는 점점 현실 가까이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모르겠다. 이러다가 나 자신이 그 동화 속 소년처럼 환상 세계로 들어가 버리고 이승에는 내 그림자조차 남지 않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그렇게만 된다면야 뭘 더 바랄까...).
각설하고, 환상 세계의 '어린 여왕'의 존재, 그 여왕의 통치 방법, 주민들의 의식은 정말 흥미롭다. '장자(莊子)'에 나올 법한 이야기 같기도 하다.
어린 여왕에 대해 다 이야기하려면 아예 그 두툼한 책을 다 필사해야 할 것 같아서 직접적으로 묘사되어 있는 부분만 필사해 놓기로 했다.
어린 여왕은 통치하지 않았고, 결코 폭력을 쓰거나 자신의 권위를 이용하지 않았으며, 명령을 하지도 않았고 아무에게도 그릇된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또 결코 간섭하지 않았으며, 누구도 여왕에게 반항하거나 나쁜 짓을 할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결코 침략자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필요가 없었다. 그 앞에서는 누구나 똑같이 대우받았다.
여왕은 그저 그 자리에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특별한 방식으로 있었다. 여왕은 환상 세계 모든 생명의 중심이었다.
그리고 모든 피조물이─선하거나 악하거나, 아름답거나 추하거나, 명랑하거나 진지하거나, 멍청하거나 현명하거나 상관없이─전부 여왕의 존재 때문에 존재할 뿐이었다. 여왕 없이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었다. 심장이 없어지면 인간의 육체가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뭘 더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언제나 우리들 가까이에 있는, 나 같으면 오늘 밤 꿈에도 또 그 세계로 들어갈 환상 세계는, 저 어린 여왕이 통치한다는 것만 상기하며 지낸다 해도 생각하며 산다는 게 훨씬 재미있을 것 같다.
내 희망은 이제 그 어린 여왕이 통치하는 환상 세계를 경험해 보는 것이고, 어쩌면 그 소망은 보다 쉽게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 같은 예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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