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르만 헤세 《동방 순례》
권혁준 옮김, 현대문학 2026년 3월호(110~184)
헤르만 헤세의 책을 몇 권 읽어보았다. 《데미안》이나 《수레바퀴 아래서》보다는 《책이라는 세계》《싯다르타》가 더 좋았는데 나중에 읽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제 《현대문학》에 실린 《동방 순례》를 읽게 된 건 행운이다.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은 이 작품이 그의 대표작이라고 했었다. 마침내 헤르만 헤세가 어떤 작가였는지 짐작하게 되었다.
헤세는 그의 삶, 그의 생애를 이 작품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럼 자서전인가? 헤세가 들으면 엉뚱하다 할 것이다. 이 작품은 산문과 운문의 경계에 있다는 느낌이었다. 동방 순례 결맹(혈맹)에서 벗어났다가 결맹의 하인인 줄 알았던 최고 지도자 레오에 의해 구출되었다는 얘기였다.
우리는 돈과 숫자와 시간으로 망가진 세상에서 탄생하여 삶의 참된 내용을 앗아 가는 문명의 이기들을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특히 철도나 시계 같은 기계들이 그랬다. 우리가 한결같이 지킨 또 하나의 원칙은, 무척이나 오래된 결맹의 역사와 믿음에 관련된 장소나 기념품을 모두 찾아보고 경배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여정에 속한 모든 경건한 장소와 기념물과 교회들, 공경할 만한 묘지들을 찾아가 경배했고, 작은 교회당과 제단들을 꽃으로 장식했다. 또 폐허에서는 노래와 침묵의 명상을 바치며 기념했고, 죽은 자들을 음악과 묵도로 축도했다.(118)
이 부분이 그 결맹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긴 하지만 아무래도 오해하기 쉬울 것 같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내 각각의 기억들이 서로 차이를 보여 어려움을 느낀다. 이미 언급했듯이 우리는 작은 모임으로 행진하기도 했고 소규모 부대를 형성하기도 했고 심지어 대부대를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단 한 명의 동료와 남게 되기도 했고, 어떤 때는 천막도 통솔자도 대변인도 없이 완전히 혼자서 어떤 지방에 머물기도 했다. 더구나 이야기를 한층 더 어렵게 하는 것은, 우리가 공간을 가로지르는 여행만 한 것이 아니라 시간을 가로질러 여행하기도 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동방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또한 중세나 황금시대로도 여행했다. 이탈리아나 스위스를 지나가면서 때로는 10세기에서 밤을 지냈고 족장들이나 요정들의 집에서 머물기도 했다. 혼자 있을 때면 자주 나 자신의 과거 속 장소나 예전에 알고 지냈던 사람들을 다시 찾기도 했는데, 라인강 상류에서 숲이 우거진 강변을 따라 예전 약혼자와 함께 거닐기도 했고, 튀빙겐이나 바젤 또는 피렌체에서 젊은 시절의 친구들과 술을 마시기도 했다. 또 소년 시절로 돌아가 학창 시절의 친구들과 나비를 잡거나 수달을 잡으려고 매복하기도 했다. 어떤 때는 즐겨 읽는 책들에 나오는 좋아하는 인물들을 만나기도 했는데, (...)
그러다 내가 어느 골짜기에서 다시 우리 모임으로 돌아와 결맹의 노래를 듣고 통솔자들의 천막을 마주 보고 야영하면, 어린 시절 속으로 걸어 들어갔던 일이나 산초와 말을 타고 달렸던 일이 우리 여행의 필연적인 일부임이 곧 분명해졌다. 우리의 목표는 그저 동방에 이르는 것만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동방은 그저 어떤 나라, 어떤 지역만이 아니었다. 영혼의 고향이자 청춘이었고, 어디에나 있으면서 어느 곳에도 없는, 모든 시간이 하나가 되어버린 그런 곳이었다.(126~127)
이 정도면 될지 모르겠다. 옮겨 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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