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2000
책 읽기에 몰두하는 청년 니코스 카잔차키스(크레타 출신 그리스인)가 늙은 친구 조르바와 함께한 이야기다.
소설 속 '나'(話者)의 이름을 찾지 못했다. 그러므로 소설을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 자신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의 영혼에 깊은 골을 남긴 사람을 호메로스, 베르그송, 니체 그리고 조르바라고 했다.
조르바는 실제 인물이었고, 카잔차키스에게는 '자유'의 상징이었다.
「그래서요, 조르바. 누사는 어떻게 되었어요?」
조르바가 먼 바다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어느 날 저녁, 집으로 돌아와 보니 없어요. 가 버린 겁니다. 마을에 미남 군인이 하나 들어왔다가 채간 거지요. 끝난 겁니다. 내 가슴은 찢어지는 것 같습디다. 그러나 그놈의 상처는 잘도 아뭅디다. 빨강, 노랑, 검정 천 조각을 굵은 실로 요리 꿰매고 조리 꿰맨 돛폭 보셨을 게요. 아무리 사나운 폭풍우에도 찢어지지 않아요. 내 가슴도 그것 비슷합니다. 구멍이 뿡뿡 뚫어져 조각조각 갖다 기웠지요.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요!」
「조르바! 그럼 누사에겐 감정이 없다는 거군요!」
「있을 턱이 없지 않소! 두목, 당신은 여자가 별것인 줄 아는데……. 하기야 별것은 별것이지. 여자는 인간이 아니에요.! 그런데 뭣하러 감정을 품어? 여자는 불가사의한 거예요. 법률과 종교가 들고 나서 봐야 여자에겐 해당 사항이 없어요. 여자에게 대해서는 그런 걸 쓰면 안 됩니다. 두목, 그건 너무 가혹한 짓이에요. 공정하지 못해요. 내가 법을 만든다면 남자와 여자에게 같은 법을 만들어 적용하진 않겠어요. 남자에겐 십 계명, 백 계명, 천 계명이 필요합니다. 결국 사내는 사내니까…… 계명이 아무리 많아도 지킬 능력이 있어요. 그러나 여자에게 필요한 율법은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 아니 두목, 이놈의 이야기를 몇 번이나 되풀이해야 하는 겁니까……. 여자는 힘이 없는 피조물이오. 두목, 누사를 위해 마십시다. 그리고 여자를 위해…… 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 남자들에게 분별력을 조금 더 허락하셨으면!」(153~154)
조르바라는 인물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인물, 비현실적 인물 같아서 그럴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조르바라는 사내가 부러웠다. 그는 살과 피로 싸우고 죽이고 입을 맞추면서 내가 펜과 잉크로 배우려던 것들을 고스란히 살아온 것이었다. 내가 고독 속에서 의자에 눌어붙어 풀어 보려고 하던 문제를 이 사나이는 칼 한 자루로 산속의 맑은 대기를 마시며 풀어 버린 것이었다.(389)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삶의 여정은 신과 인간, 천사와 악마,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 보이는 존재와 보이지 않는 존재, 내재적인 것과 초월적인 것, 사색과 행동 등 영원히 모순되는 개념에서 하나의 조화를 창출하려는 끊임없는 투쟁이었다. 그리고 그 투쟁의 현현(顯現)이 조르바라는 인물이었다.
조르바와 함께한 생활은 크레타 섬 갈탄 광산 사업의 실패로 끝장이 나지만 돈, 사람, 고가선, 수레 등 모든 것을 잃고 난 후 마침내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
나는 언젠가 조르바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어느 날 밤, 눈으로 덮인 마케도니아 산에는 굉장한 강풍이 일었지요. 내가 자고 있는 오두막을 뒤흔들며 뒤집어엎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진작 이걸 비끄러매고 필요한 곳은 보강해 두었지요. 나는 불가에 홀로 앉아 웃으면서 바람의 약을 올렸어요. 〈이것 보게. 아무리 그래 봐야 우리 오두막에는 들어올 수 없어. 내가 문을 열어 주지 않을 거니까. 내 불을 끌 수는 없겠어. 내 오두막을 엎어? 그렇게는 안 되네.〉」(499)
그는 조르바처럼 호령한다.
「내 영혼에는 들어오지 못해. 문을 열어 주지 않을 거니까. 내 불을 끌 수도 없어. 나를 뒤엎다니. 어림없는 수작!」(...)
그는 크레타 해변에서 조르바와 함께한 생활을 돌아본다. 수많은 환희와 즐거움을 체험한 생활이었다. 조르바와의 생활은 그의 가슴을 넓혀 주었다. 조르바의 말들은 그의 영혼을 안식케 했다. 정확한 직감과 독수리 같은 원시의 모습을 함께 지닌 조르바는 지름길을 잡아 숨 한번 차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노력의 정상에 이르러 거기에서 더 나아가기도 했다.
두 사람은 헤어진다. 조르바는 세상 이곳저곳을 떠돌며 소식을 전하다가 사라졌고,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영혼의 자유를 찾아 다시 책 속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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