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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이데올로기에는 치료약이 없다

by 답설재 2026. 3. 14.

이데올로기에는 치료약이 없다. 이데올로기는 인간을 똑똑하게 만드는 여러 인지 능력으로부터 생겨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길고 추상적인 인과의 사슬을 머릿속에 그릴 줄 안다. 남들로부터 지식을 얻는다. 자신의 행동을 남들에 맞추어 조절하고, 때로는 공통의 규범을 지킨다. 팀을 이뤄 일함으로써, 혼자는 해내지 못했을 묘기를 해낸다. 구체적인 세부 사항에 일일이 신경 쓰지 않은 채 추상을 즐길 줄 안다. 하나의 행동을 다각도로 해석할 줄 안다. 수단과 목적, 목표와 부산물이 전혀 다른 여러 방식으로.

이런 능력들이 유해하게 조합될 때, 위험한 이데올로기가 얼마든지 분출한다. 누군가 어떤 집단을 악마화하거나 비인간화한 뒤, 그들만 제거하면 무한한 선을 달성할 수 있다는 이론을 구축할 수 있다. 그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한 줌의 추종자들은 불신자를 처벌하는 방법으로 그 발상을 퍼뜨린다. 무리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발상에 휘둘리거나, 일신의 위협을 느껴 별수 없이 지지한다. 회의주의자들은 침묵을 강요당하거나 고립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위주의 논리에 따르기 마련이라, 내면의 현명한 판단에 위배되는 계획을 기꺼이 수행할 수 있다.

온 나라가 유해한 이데올로기에 전염되는 현상을 확실히 막을 방법은 없지만, 예방책은 하나 있다. 바로 열린 사회이다. 사람과 생각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사회, 누군가 다른 견해를 공표했다고 해서 처벌하지 않는 사회이다. 설령 그것이 점잖은 합의에 위배되는 이단적 견해로 보이더라도, 현대의 세계주의적 민주 사회들이 집단 살해와 이데올로기적 내전에 비교적 면역이 있다는 사실은 이 명제를 얼마간 지지하는 증거이다. 그리고 대규모 폭력에 취약한 체제들에서 검열과 편협이 재발하곤 한다는 사실은 같은 동전의 뒷면에 해당하는 증거이다.

 

 

 

 

 

 

달라도 서로 너무 다르다.

내려놓자, 낙관적으로 보자, 낙관적으로 보며 가자 해도, 나날이 더 복잡해지는 느낌의 세상을 걱정하게 된다. 쓸데없는 걱정인 줄 알면서도 어떻게 낙관적으로 볼 수 있나, 어떻게 내려놓고 갈 수 있나 스스로 부정하게 된다. 아슬아슬해서 저렇게 해서 어떻게 하나 싶고, 너무 엉뚱해서 차라리 어처구니가 없다고 해야 할 일들을 목격하고 있다.

미구에 한 사람이면 하나의 이데올로기, 두 명이면 두 가지 이데올로기가 있게 되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도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라는 두툼한 책을 쓴 스티브 핑거는 그 책 8장 '내면의 악마들' 결론 부분에서 위와 같이 썼다(963~964).

 

이데올로기라면 지긋지긋한데(그렇게 보면 다 이데올로기 문제다!) 저 부분을 읽으며 스티븐 핑거의 생각을 신뢰하기로 했다. 소화제를 먹은 것처럼 속이 뚫리는 느낌이다.

적어도 뭔가 있겠지 싶다.

더 생각하면 또 머리가 아플 것이다.

 

"온 나라가 유해한 이데올로기에 전염되는 현상을 확실히 막을 방법은 없지만, 예방책은 하나 있다."

얼마나 든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