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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허버트 조지 웰스 《눈먼 자들의 나라The Country of the Blind》

by 답설재 2026. 4. 15.

이야기의 첫 부분이다.

 

 

불모의 에콰도르 안데스산맥의 침보라소산에서 300마일 이상, 눈 덮인 코토팍시산에서 100마일 이상 떨어진 곳에, 인적이 닿지 않는 신비한 산골짜기가 있었다.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눈먼 자들의 나라였다. 아주 오래전에 그 골짜기는 세상과 소통했고, 무서운 골짜기와 얼어붙은 고갯길을 지나면 그 나라의 평온한 들판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실제로 몇몇이 그곳에 왔다. 사악한 스페인 지도자의 탐욕과 폭정을 피해 달아난 페루 혼혈 일가족 같은 이들이었다. 그러고 나서 민도밤바의 화산이 무시무시하게 폭발해서 키토는 17일 동안 어둠에 잠겼고, 야구아치에서는 물이 끓어올라 죽은 물고기들이 과야킬까지 떠내려갔다. 태평양 연안에서는 사방에 산사태가 나면서 순식간에 눈이 녹아 홍수가 났고, 아라쿠아의 오래된 산꼭대기의 한쪽 산마루는 천둥 같은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그래서 눈먼 자들의 나라로 들어가는 길은 진취적인 사람들의 발길 앞에서 완전히 닫혀버렸다.

 

 

 

지도 출처 : 테디공주의 블로그 "Today's trip"

 

 

 

에콰도르의 위치 파악이라도 해야 실감이 날 것 같아서 지도를 하나 찾아봤다.

 

매우 사실적으로 보이는 위의 설명(소설 첫머리)은, 세상과 완전히 격리된(고립된) 산골짜기가 있고, 그곳은 모든 주민이 눈이 멀어버린 눈먼 사람들의 나라라는 설정이다.

왜 그렇게 되었나? 그 골짜기를 둘러싼 산지가 화산 폭발에 의해 형성된 완전한 절벽이어서 사람들이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못하게 되었다. 또 눈이 멀게 되는 병이 돌아서 결국 사람들이 다 눈이 멀게 되었는데 그렇게 15대쯤 지나자 옛날 사람들은 눈으로 세상을 보았다는 사실이 설화처럼 전해져 마침내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인식하게 되었다.

 

모험심이 강한 누네스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 신비로운 골짜기를 둘러싼 높디높은 산에 올라갔다가 발을 헛디뎠겠지, 눈밭에서 미끄러져 이쪽으로 굴러 떨어진 것이 아니라 그 눈먼 사람들의 나라로 들어가게 되었고, 모든 사람이 눈먼 나라에서는 애꾸가 왕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왕이 되겠다는 포부를 지니고 접근하게 되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사람들의 미움이나 받는 위험인물로 지내다가 겨우 한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하는 사이게 되었는데, 여인과 그 아버지는 누네스에게 눈알을 빼버리고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자고 권유하고 애원한다. 누네스는 아름다운 세상을 포기할 수 없어 탈출을 시도하지만 소설이 끝나는 장면까지 다 읽어도 그가 그 험준한 산을 넘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흥미진진한 이 소설을 'SF 소설의 원조' 허버트 조지 웰스가 썼다. 그는 '과학의 발전이 눈부시던 시대를 배경으로 관습과 차별을 넘어선 유토피아적인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앞당기고자 평생 100편이 넘는 소설과 논픽션을 발표'했다고 한다.

이 소설은《현대문학》 4월호에서 봤다(최용준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