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그게 다 눈속임, 계략에 따른 가해의 욕망이라고?!

by 답설재 2026. 4. 29.

자연에서 미적인 요소를 발견하려는 이런 버릇은 한때 꽃꽂이 사범 즉, 꽃가위를 들고 꽃 미용사 노릇을 해서 그런가 보다. 주어진 재료로, 보는 사람이 가장 편안한 느낌이 들도록 실내나 특정 장소에 자연을 옮겨놓는 일을 하는 사람, 소우주의 미적 공간을 꾸미는 사람이다. 흔히 플로리스트(flower + artist)라 한다. 9년이나 배운 세월이 좀 아깝지만 꽃들과 나눈 비밀 언어를 생각하면 되레 위안을 받는다. 꽃의 종류만큼 꽃을 다루는 방법도 다양한데, 그 인위성과 눈속임은 어쩔 수 없다. 최소한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

 

 

류병숙의 에세이 「꽃가위」의 한 부분이다(미래동시모임 동인지 《나 나왔다》 계간문예 2023, 91쪽).

글 속에 담긴 마음과 생각을 짐작해 보며 3년간 잊지 않고 지냈으니 앞으로도 오래 그렇게 지낼 수 있으리라.

 

류병숙은 동시작가다.

이런 마음, 이런 생각을 가진 이가 이런 글을 쓰기보다는 동시 쓰는 데 열중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이해하기 어려운 입장이긴 하지만, 그건 일단 아이들을 위해서는 고마운 일일 것이다.

류병숙 작가는 나와 같은 학교를 나온 후배다. 이건 자랑이 아니라 후배이긴 하지만 어려워서 "이런 글 좀 쓰시지 그래요?" 할 수 없더라는 얘기다.

 

내가 이 글을 마음속에 간직하게 된 것은 아마도 마크 롤랜즈라는 철학자의 생각에 자극을 받고 있었던 것이 배경이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철학자와 늑대》라는 걸출한 책에 이렇게 써놓았다.

 

 

영장류의 사회적 지능의 핵심은 속임수와 계략이다. (……) 인류의 과학적·예술적 지능은 속임수와 계략의 피해자가 되기보다는 가해자가 되고자 하는 진화의 부산물이다.

 

 

그 책에는 '영장류는 늑대가 결코 꿈도 꾸지 못하고 실행하지도 못할 무자비한 방식으로 동료를 대한다'거나 '자연계에서 유일하게 영장류만이 도덕적 동물이 되기에 충분할 만큼 불만으로 가득하다'는 등 속이 시원한 말들이 수두룩할 뿐만 아니라 늑대와의 친교와 이별이 눈물을 글썽이게 했지만 지금 나는 그런 얘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어서 유감이다.

 

그럼 지금 뭐냐!

예술가나 과학자는 그래 속임수와 계략으로 남을 해코지나 하고자 하는 지능이 발달한 영장류라는 말이냐?

천만의 말씀이다. 마크 롤랜즈도 이미 그랬다. 인류의 과학적·예술적 지능은 '이런저런 진화'의 부산물이라고. 나도 처음엔 형용사나 부사 따위 다 지워버리고 과학자와 예술가는 사기꾼이라고 몰아붙일 수도 있다는 건가 싶기도 했지만, 누가 시킨다 해도 나에게는 그럴 마음이 없고, 저 문장의 의미의 본말이 거기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설사 그래봤자 소용없다. 그런다고 놀랄 사람 하나도 없고, 그런다고 예술적·과학적 성과와 그 신비로움이 줄어들 가능성은 0.01%도 없을 것이다.

"꽃의 종류만큼 꽃을 다루는 방법도 다양한데, 그 인위성과 눈속임은 어쩔 수 없다. 최소한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

저 고운 내 후배 작가도 이미 그렇게 써놓았고 그 의도를 잘 파악해야 하거니와 과학자나 예술가를 사기꾼이니 뭐니 하면 결국 심사 고약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기에는 알맞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