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내 그녀의 시선은 하얀색 커튼이 겹겹이 드리운 창을 거쳐 소파 뒤 벽면에 설치된 목제 장식장에 이르렀다. 거기에는 위스키, 브랜디, 샴페인 등 각종 술을 위한 크리스털 잔들이 영롱한 빛을 발하며 놓여 있었다.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장중한 바로크 선율을 들으며 그 빛을 바라보노라니 불현듯 어린 시절, 아버지가 양주를 넣어두던 거실장이 희진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문학동네』 2014년 겨울호, 김연수 단편소설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54쪽에서)
나는 ○마트에 가면 양주 코너 앞을 지나간다.
아버지에 대한 인사이다.
나는 집에 갈 때마다 됫병짜리 소주를(요즘도 됫병이 있는지 이제 나는 모른다) 두 병씩 사 갖고 갔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한 병을 다 비웠다. 그러면서 그랬다. "한 병은 아무개에게도 한 잔 주고 마셔야 한다." 그러면 그 아무개가 온 동네에 소문을 낸다는 뜻이다("저 집 아들은 올 때마다 양손에 됫병 소주를 사 갖고 온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속앓이를 하면서도 그렇게 마셔댔는데 옻닭을 먹고 난 뒤에는 속이 편해져서 마음 놓고 마실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적십자병원 의사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위가 습자지처럼 얇아졌으니 청춘에 죽고 싶거든 더 마셔라 해서 그 길로 조금씩 마시려고 했는데도 결국은 지병을 갖게 되었다.
언젠가 아버지는 다른 아들 집에 잠시 다녀와서 그랬다. "양주 마시던 것이 보였는데 한 잔 마시고 싶더라."
나는 듣기만 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양주를 마셔본 적도 없고, 양주를 살 마음도 먹지 못할 때였다. 초등학교 교사는 양주파(派)일 수가 없는 시절이었다. 무조건 막걸리와 소주였고, 일 년에 두어 번 특별한 날은 맥주였다.
한 번은 아버지가 다니러 왔을 때 절을 올리고 자리에 앉자마자 "저 출근하거든 어디 가셔서 술도 드시고 그러십시오." 하고 내 주머니의 돈을 아버지 주머니로 옮겼는데 이런 일이 있나! 아내가 그랬다. "그러지 말고 오늘 모시고 나가서 구경도 시켜 드리고 술도 사드리면 좋겠네요."
나는 그 일요일 아침나절, 아버지 주머니로 옮겨간 돈을 도로 내어달라고 해서 둘이서 시내로 나갈 수 있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가까워지자 아버지도 세상을 떠났다.
세상이 변해서 걸핏하면 양주가 생겼다.
나는 그걸 모으기만 했다.
내가 왜 이러지 하면서도 마실 수는 없었다.
나는 미친놈이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지도 30년이 가까워지고 있다. 나도 세상을 떠날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떠나면 저 양주를 누가 어떻게 하나 생각하다가 한 병, 두 병 마음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게 되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계산을 할 수 있다.
나는 양주병 수만큼은 그 양주가 내 손에 들어올 때마다 아버지를 생각했고, 다시 그 양주병을 없앨 때마다 아버지를 생각했다.
다른 생각도 한다. 아버지도 없는 세상을 살아오면서 양주병을 모은 건 나의 죄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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