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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모욕에 대하여

by 답설재 2026. 3. 16.

"신분이 낮은 사람일수록 그에게 저질러질 수 있는 무례함의 한도가 커진다."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문학과지성사 2015)에서 이 문장을 보았다.

노인은 젊은이에 비해 신분이 낮을까, 높을까?

나는 낮다고 강변하고 싶은데 이 문장의 의미로는 높을 수도 있다. 또 그 상황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이번에도 내 정서로 이야기하면 노인의 신분은 날이 갈수록 낮아져서 거의 추락에 가깝다는 느낌이 있다.

나는 남에게 무례한 행위를 하고 싶지 않고, 그런 행위를 하지 않는다고 자부하고 있으므로 상대방이 내게 무례한 행위를 하는 꼴은 두고 볼 수가 없다.

 

내가 이 블로그에 소개하는 어떤 작품에 대해 "말 같지도 않은 소리"라고 했다면 그건 누구에 대한 모욕일까?

우선 나에 대한 모욕이고, 나 때문에 작가까지 모욕을 당하는 것이다. 더구나 대개의 블로그들은 단순하게 작품(대부분 詩)만 보여주는데 비해 나는 어쭙잖긴 하지만 감상문을 써서 소개하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강하게 다가온다. 심지어 그런 사람과 상대해 온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왜 그렇게 썼는지 차근차근 물어보고, 내 견해를 더 자세히 이야기하고, 그럴 수가 없다.

그러고 싶질 않다. 그러다가 그 논의를 끝내지도 못하고 블로그의 문을 닫아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지금 누가 옳은지, 혹은 자신이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나더러 배워가며 나와 긴 시간을 두고 재미있게, 진지하게 논의를 해보자는 것인가? 나에게 뭔가 좀 가르쳐주겠다는 것인가?' 숨이 가쁘다.

상대방이 젊은이라면 말할 것도 없이 그 느낌이 더 심해진다.

어떤 노인의 초조함 같은 것에 대해서는 한 살이라도 젊은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점이 있다는 것을 그 한 살이라도 젊은 사람은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오죽하면 올리버 색스가 말년에 이르러 세상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겠다고 썼겠는가.

그러므로 그럴 때 나는 얼른 돌아서야 한다. 그것이 나를 달래고 내 가슴을 가라앉힐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윌리엄 제임스라는 이가 《심리학의 원리The Principles of Psychology》에서 그랬단다(알랭 드 보통 《불안 Status Anxiety》은행나무 2024, 21).

 

"사회에서 밀려나 모든 구성원으로부터 완전히 무시를 당하는 것─이런 일이 물리적으로 가능할지는 모르겠으나─보다 더 잔인한 벌은 생각해 낼 수 없을 것이다. 방 안에 들어가도 아무도 고개를 돌리지 않고, 말을 해도 대꾸도 안 하고, 무슨 짓을 해도 신경도 쓰지 않고, 만나는 모든 사람이 죽은 사람 취급을 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물건을 상대하듯 한다면, 오래지 않아 울화와 무력한 절망감을 견디지 못해 차라리 잔인한 고문을 당하는 쪽이 낫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무시는 모욕에 대한 대처가 될 수 있을까?

다른 블로그들에게 그렇게 하자고 선동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저 모욕을 당한 나 혼자 그를 무시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면 그는 이제 다른 이를 찾아가게 되고, 나를 상대할 때보다 더 조심하여 상대방이 나처럼 자신을 무시하지 않도록 유념하겠지?

그럼 나는 그에게 남에게 모욕을 주어선 안 된다는 가르침을 준 것인가?

나는 그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무시와 외면은 속물적인 세상이 중요한 상징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리는 감정적 형벌이다."(위의 책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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