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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비공개로 뜨겁게 요란하게, 쉽게 소리 없이

by 답설재 2026. 3. 18.

시종일관 비공개 글인 사람이 있다.

짧지 않은 세월 왕래하면서 긴요한 경우 비공개 글을 주고받게 되면 신뢰를 넘어 의지하고 싶은 마음까지 생기는 건 당연하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비공개 글로 다가온 사람을 나는 믿을 수가 없다. 얼마 후에는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미안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여차하면 사라지려고 한 발을 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럴 이유도 없지만 무슨 굳은 언약을 했다 해도 그렇게 사라진 사람을 내가 어디 가서 찾겠나. 비공개로 오고 비공개로 있었으니 흔적 없이 사라지기도 쉬울 것이다. 부담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걸 가지고 비공개 글인 경우가 싫다.

 

다 집어치우고 둘이서 1:1로 상대하면 쉽게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특별한 관계가 형성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나이에, 이 형편에, 그렇게 할 이유가 나에게는 없다.

'재수 좋으면 은밀하게 비밀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겠다'고 블로그를 하고 있는 건 아니다.

 

나는 '비공개 글'이나 '공개 글'(?)이나 똑같은 힘을 들여서 쓴다.

그렇게 애써 대답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그쪽에서 먼저 자신이 쓴 글을 지워버려서 내가 쓴 글만 덩그러니 걸려 있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진다. '내가 지금 애들 장난도 아니고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게 된다.

단 한 줄이라도 그를 위해서만 썼다고 생각하면 답답해지기도 하고, 조급해지기도 하고, 마음이 복잡해진다.

지우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미 사라진 사람이 쓴 글을 내내 걸어두는 것이 그리 바람직하지도 않다. 얼마쯤 서로 부끄러운 내용일 경우조차 있기 때문이다.

 

늘 비공개 글을 쓰는 사람은 뜨겁게 요란하게 다가와서 쉽게 소리 없이 사라진다.

사라지고나면 아름답지도 않다.

 

그렇게 비공개 글을 주고받다가 전번을 달라고 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게 해 주겠다, 아픈 마음을 고쳐주겠다고 한 경우도 있었고, 이 사람은 쉽구나 싶어서 다가왔다가 그리 쉽진 않겠구나 하고 사라진 경우도 있다. 더 있다. 다 밝혀서 뭘 하나.

그쪽에서 '친구맺기'를 하고 그쪽에서 사라지는 것을 나는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한다.

바람직한 만남도 많겠지만, 아이들 말마따나 세상은 요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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