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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나는 어떤 연설을 들었나?

by 답설재 2026. 3. 21.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라는 책에서 스티븐 핑거가 그렇게 썼다.

 

나는 1976년에 대학을 졸업했다. 대부분의 동창들이 그렇겠지만, 나는 어른의 세계로 나아가는 순간이었던 학위 수여식에서 어떤 연설을 들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그가 그렇게 쓴 건, 1970년대로 돌아가 앞날을 예측해 보는 글(연설 원고)을 쓰기 위한 것이었지만, 이 문장을 읽고 생각해 보았다.

나는 무엇을 들었을까?

거의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게 신기했다. 스티븐 핑거의 말 그대로인 것이 신기했다.

수십 년 전 일들이니 기억나지 않는 게 정상일까?

인상적인 장면은 떠오른다.

 

교단 초년 시절에 읍내에 가서 강습을 받던 일.

장학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세상이 변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지식의 암기를 강요하지 말고 수업을 탐구적으로, 구조적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나 내가 교단을 내려오기까지 그 주문은 실천되지 않았고, 지금은 실천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후의 수많은 연수회에서 들은 것들은 단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한 달간 진행된 교감자격연수 때의 일로는 딱 한 가지, 국립국악원장이 와서 뭐라고 한 끝에 '진도아리랑'을 불러주었다. 그 노래를 들으며 생각했었다. 나도 국악을 전공했었더라면......

 

교장자격연수 때는? 한국교원대학교 연수원에서의 한 달간 들은 건 정말이지 단 한 가지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교장자격증은 받았다.

그렇지만 그 연수원으로 가기 전, 민간 기업 연수원 LG 인화원에서 보낸 1주일(5.5일)은 이후 기회 있을 때마다 떠올랐다. 그곳에서는 그동안 이론으로만 들어서 기억하던, 책에서만 읽었던 교수·학습 원리들을 실습을 통해 체득(!)할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나처럼 그 연수를 좋아한 사람을 나는 발견하지 못했다. 다들 싫어했다. 당시 장관의 특별 배려로 시행된 민간 기업에서의 그 연수는 그 한 해로 끝나고 이후 우리 후배들은 이전처럼 한국교원대학교와 서울대학교 연수원으로 가서 자유롭게 혹은 편안한 마음으로 주입식 강의를 들으며 졸고 싶은 사람은 졸고, 듣고 싶은 사람은 들어서 교장자격증을 받았다.

 

거의 쓸데없다는 이야기를 길게 했다. 그럼 나는 어떤 연설, 어떤 강의를 했나?

교사 시절에도 제법 똑똑하다고, 책 좀 읽었다고 동료 교사들이나 학부모들에게 강의를 하기도 하고, 나중에 교육부에서 근무할 때는 이곳저곳 전국의 연수원, 교육청 행사에서 헤아릴 수 없는 강의나 연설을 했다. 200번일까, 300번일까? 나는 무엇을 알려주고 강조했을까? 몇 명은 내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 몇 명은 이후 교단에서 씩씩하게 '혈투'를 벌이고 있다는 후문을 듣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게 대수일까? 이제 누가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나의 어떤 얘기를 기억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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