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라하의 추억과 낭만 - 체코 프라하국립미술관 소장품展"(2013)에서 이 그림을 봤다.
네 사내 모두 수치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 같다. 아니, 아이들보다 못하다. 짐승 같다. 벌거벗은 상태에서조차 자신을 내세우려는 듯하다. 가관이다. 저 몸으로 뭘 과시하려고 드나?
나는 이 나이에도 탈의실이나 샤워실에서 수치심을 느낀다. 빈약한 젊음이었지만 그것조차 빠져나가고 나니까 또 다른 부끄러움이 나를 움츠려 들게 하고 주저앉게 한다.
아이들은 수치심은커녕 완전 저희들 세상이다. 세월 가는 줄 모르고 떠들어대고 모든 것 잊고 떠들어댄다. 옷을 입었을 때보다 더 잘 떠들어댄다.
"너희들 지금 재미있지?"
나는 곧잘 그렇게 물어본다. 그러면 녀석들은 순간 하던 짓을 딱 멈추고 '뭐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는, 무서운 사람 아니네 하는 표정으로 "예!" 하고는 또 즐거움 속으로 우르르 들어가 버린다.
어제는 다섯 녀석이 떠들어댔는데 비만(肥滿)인 아이가 세 명, 정상인 아이가 두 명이었다. 정상(正常)? 비만인 아이가 비정상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정상인 아이'를 '비만이 아닌 아이'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인지 모르겠다. 헷갈린다.
그 아이들은 비만이고 비만이 아니고를 따지지 않는다. 속으로만 생각하고 겉으로는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 건 생각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저 증기탕 그림 속의 네 사내들은 옷 입고 밖으로 나오면 다 그럴듯하게 보일 사내들이다.
그처럼 내가 본 그 아이들도 옷 입고 밖에서 만나면 한결같이 귀여운 사내아이들이다. 또 헷갈린다. 발가벗은 상태에서는 귀엽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러나저러나 귀여운데 옷을 벗은 상태에서는 '비만'과 '비만이 아닌 아이'가 눈에 띈다는 얘기일 뿐이다.
두 가지 인간, 그러니까 저 증기탕 그림 속 사내들과 내가 만나는 발가벗은 아이들은 서로 다른 인간들이다.
증기탕 그림 속 사내들은 배는 볼록하고 여기저기가 축 늘어졌는데도 어디서나 자신을 내세우고 과시하는 인간들이고, 내가 만나는 발가벗은 아이들은 어디서나 즐겁고, 즐겁게 떠들어대는 인간들이다.
다만 내가 만나는 그 발가벗은 아이들이 자라서 저 증기탕 속 사내들처럼 변하게 된다는 게 아이러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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