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키어넌도 (초크와 요나손의 견해에) 동의했다. "이 책의 핵심적 결론은 집단 살해가 20세기 이전에 실제로 흔히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그의 목차 중 첫 쪽만 봐도 그의 말뜻을 알 수 있다.
☞ Kiernan, B. 2007. Blood and soil: A world history of genocide and extermination from Sparta to Darfur. New Haven, Conn.: Yale University Press.
1부: 초기 제국주의 팽창기
1. 고전기 집단 살해와 근대 초기의 기억
2. 스페인의 신세계 정복, 1492~1600년
3. 동아시아의 총과 집단 살해, 1400~1600년
4. 근대 초기 동남아시아의 집단 살해적 학살
2부: 정착자 식민주의
5. 영국의 아일랜드 정복, 1565~1603년
6. 식민지 북아메리카, 1600~1776년
7. 19세기 오스트레일리아의 집단 살해와 폭력
8. 미국의 집단 살해
9. 아프리카에서 정착자들의 집단 살해, 1830~1910년
(573)
·'스페인의 신세계 정복'에 관한 자료로서는 "사피엔스"(유발 하라리)의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대학원 '세계지리' 시간에 들은, 유럽인(영국인)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학살 이야기는 너무나 끔찍해서 백인에 대한 일말의 존경심도 허락하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한 원주민을 향해 총을 쏘아 누가 쏜 총에 맞은 원주민이 가장 높이 뛰어오르는지 내기를 했다는 것이었다.
#8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충돌은 현재 진행되는 치명적 복수의 악순환들 중에서도 가장 골치 아픈 사례로 불린다. 폴리애나라도 감히 해결의 실마리를 안다는 주장을 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본 화해의 심리를 적용하자만, 적어도 그 해결책의 모습에 대해서는 이스라엘 소설가 아모스 오즈의 전망이 옳은 듯하다.
'비극은 두 방식으로 해소될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해결책이 있고, 체홉의 해결책이 있다. 셰익스피어 비극의 결말에서는 무대에 시체들이 나뒹굴고, 아마도 저 높은 곳 어딘가에 정의가 어른거릴 것이다. 반면에 체홉의 비극에서는 모든 인물들이 환멸을 느끼고, 쓸쓸해지고, 상심하고, 실망하고, 철저히 망가진 상태로 끝나지만, 여전히 모두가 살아 있다. 그리고 나는 셰익스피어식이 아니라 체홉식으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비극이 해결되기를 바란다.'(926)
☞ Oz, A. 1993. A postscript ten years later. In A. Oz, In the land of Israel. New York: Harcourt.
·아모스 오즈의 어느 책에선가 팔레스타인은 그냥 두고 이스라엘만 독립하는 걸 반대하는 이야기를 읽으며 '이렇게 써도 되나?' 했었다. 숨 가쁘게 읽은 기억만 남아 있다.
#9
인간의 타락상 중 가장 극악한 형태는 무엇일까? 하나만 지목하기는 어렵다. 고를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적으로 집단 살해가 최악이라면, 질적으로 최악은 아마도 가학성(sadism)이다. 누군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싶다는 이유 외에는 어떠한 목적도 없이 타인에게 고통을 가하다니, 도덕적으로 기괴할뿐더러 지적으로 당황스럽다. 고문자가 피해자의 고통에서 어떤 개인적, 진화적 이익도 얻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죄악들과는 달리, 순수한 가학성은 보통 사람들도 환상에서나마 탐닉하는 죄스러운 쾌락이 아니다. 고양이가 산 채로 타 죽는 것을 보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고문은 과거와 현재에 거듭 등장하는 인간의 오점이다.
·이런 글을 읽으면 인간이 짐승(가령 개나 늑대)보다 낫다는 이야기가 곧이 들리질 않는다.(926)
#10
1946년 에세이 「정치와 영어」에서 조지 오웰은 정부가 관료적 어법으로 잔학 행위를 숨긴다고 폭로했다.
'우리 시대에는 정치 발언과 글이 대체로 변호할 수 없는 것을 변호하는 데 쓰인다. 영국의 계속된 인도 통치, 러시아의 숙청과 추방, 일본에 떨어뜨린 원자폭탄 따위를 변호하는 것은 실제로 충분히 가능하지만, 그러자면 그 논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야만스럽고 정당들이 공언한 목표와도 일치하지 않는 것이 된다. 그렇기에 정치의 언어는 주로 완곡어법, 논점 회피, 아니면 그저 애매모호한 표현으로만 구성될 수밖에 없다. 무방비 상태의 마을을 공중에서 폭격하고, 주민을 벌판으로 내쫓고, 가축을 기관총으로 쏘아 죽이고, 소이탄으로 집을 불태우는 것, 이런 짓을 평화화라고 부른다. 농민 수백만 명에게서 농장을 빼앗고, 그들이 몸뚱아리로 짊어질 수 있는 것만 지닌 채 터벅터벅 걸어서 다른 곳으로 옮기게 하는 것, 이런 짓을 인구이동 또는 국경 조정이라고 부른다. 재판도 거치지 않고 사람들을 몇 년씩 감옥에 가둬 두는 것, 목덜미를 쏴 죽이는 것, 북극 벌목장으로 보내어 괴혈병으로 죽어 가게 하는 것, 이런 짓을 회색분자 제거라고 부른다. 그런 행위를 지칭하면서도 그런 장면이 마음속에 떠오르지 않게 하려면 이런 어법이 필요한 것이다.'(958)
·병약해 보이는 조지 오웰, 그의 에세이집 "나는 왜 쓰는가?"
#11
이데올로기에는 치료약이 없다. 이데올로기는 인간을 똑똑하게 만드는 여러 인지 능력으로부터 생겨나기 때문이다.(963)
·그럼 이 일을 어떻게 하나...
#12
·이 책은 빌 게이츠가 방한하여 TV 프로그램 '유퀴즈온더블록'에 출연했을 때 이야기한 책 세 권 중 한 권이다.
한스 로슬링 "팩트풀니스(Factfulness)", 바츨라프 스밀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How the World ReallyWorks)" 그리고 이 책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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