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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미하엘 엔데 《모모》

by 답설재 2026. 2. 18.

 

 

 

미하엘 엔데 《모모》

한미희 옮김, 비룡소 2018(120쇄)

 

 

 

회색 신사(시간 영업 사원 XYQ 384 b호)가 이발사 푸지 씨에게 설명해 주고 있다.

 

"선생님. 시간을 어떻게 아끼셔야 하는지 잘 아시잖습니까! 예컨대 일을 더 빨리 하시고 불필요한 부분은 모두 생략하세요. 지금까지 손님 한 명당 30분이 걸렸다면 이제 15분으로 줄이세요. 시간 낭비를 가져오는 잡담은 피하세요. 나이 드신 어머니 곁에서 보내는 시간을 절반으로 단축할 수도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어머니를, 좋지만 값이 싼 양로원에 보내는 겁니다. 그러면 어머니를 돌볼 필요가 없으니까 고스란히 한 시간을 아낄 수 있지요.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앵무새는 내다 버리세요! 다리아 양을 꼭 만나야 한다며 두 주에 한 번만 찾아가세요! 15분 간의 저녁 명상은 집어치우세요. 무엇보다 노래를 하고, 책을 읽고, 소위 친구들을 만나느라고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얘기가 나온 김에 한 가지 충고하는데, 잘 맞는 커다란 시계를 하나 이발소에 걸어 놓으세요. 견습생이 일을 잘하고 있나 감시할 수 있게 말이지요."

 

그렇게 해서 푸지 씨는 어떻게 변했을까?

 

그는 점점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안정을 잃어 갔다. 시간을 알뜰하게 쪼개 썼지만 손톱만큼의 자투리 시간도 남지 않았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시간은 수수께끼처럼 그냥 사라져 버렸다. 그의 하루하루는 점점 더 짧아졌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나중에는 그 속도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어느새 일주일이 지났는가 하면, 한 달이 지나갔고, 한 해, 또 한 해, 또 한 해가 후딱 지나갔다.

 

사회적으로는? 곳곳 광고판, 포스터에는 번쩍번쩍 빛나는 글씨로 이런 글귀들이 적혀 있었다.

 

시간 절약 나날이 윤택해지는 삶!

시간을 아끼면 미래가 보인다!

더욱 보람찬 인생을 사는 법─시간을 아끼라!

 

사람들은 더 행복해졌나?

 

자신의 일을 기쁜 마음을 갖고 또는 애정을 갖고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것은 방해가 되었다. 가능한 한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한 한 많은 일을 하는 것, 그것만이 중요했다.

그래서 커다란 공장과 사무실에는 예외 없이 이런 글귀가 적힌 팻말들이 걸리게 되었다.

 

시간은 귀중한 것, 잃어버리지 말라!

시간은 돈과 같다. 그러니 절약하라!

 

부장의 책상 위에도, 국장의 안락의자 위에도, 의사의 진료실에도, 상점과 레스토랑과 백화점에도, 심지어는 학교와 유치원에도 이와 비슷한 팻말들이 걸리게 되었다. 이선 세태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회색 신사는 마침내 모모에게도 접근한다.

 

"인생에서 중요한 건 딱 한 가지야. 뭔가를 이루고, 뭔가 중요한 인물이 되고, 뭔가를 손에 쥐는 거지. 남보다 더 많은 걸 이룬 사람, 더 중요한 인물이 된 사람, 더 많은 걸 가진 사람한테 다른 모든 것은 저절로 주어지는 거야. 이를테면 우정, 사랑, 명예 따위가 다 그렇지. 자, 넌 친구들을 사랑한다고 했지? 우리 한 번 냉정하게 검토해 보자."

 

회색 신사는 자신도 모르게 모모에게 자신들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그 누구도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 우리가 하는 일을 알아서는 안 돼······. 우리는 아무도 우리를 기억하지 못하도록 신경을 쓰고 있어······. 우리는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어야만 일할 수 있거든······. 아주 힘든 일이야. 사람들에게서 몇 시간, 몇 분, 몇 초를 조금씩 조금씩 빼내야 하는 거야······. 사람들이 아낀 시간은 그냥 사라져 버려······. 우리는 시간을 끌어 모아······. 저장하는 거야······. 우리에겐 시간이 필요해······. 우리는 시간을 갈망하지······. 아, 너희들은 그게 뭔지 몰라. 너희들의 시간 말이야······.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어. 그래서 뼛속까지 너희들의 진을 빨아들이는 거야······. 우리는 시간이 더 필요해······. 더 많이······. 우리의 수도 늘어나니까······. 더 많이······. 더 많이······."

 

여기까지가 1, 2부이다.

3부('시간의 꽃')에서 고아 모모(MOMO)가 문제를 해결한다.

아이들이 이 동화를 읽었다면 3부를 멋지게 요약할 것이다. 나는 어른이니까, 노인이 이 동화를 읽었으니까 이와 같이 요약하는 것이다.

 

이제 대도시에서는 오랫동안 볼 수 없었던 광경이 벌어졌다. 아이들이 길 한복판에 나와 놀고, 아이들이 비키길 기다릴 수밖에 없는 운전자들은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차에서 내려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사람도 있었다. 어디서나 사람들이 서서 다정하게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안부를 자세히 물었다. 일하러 가는 사람도 창가에 놓인 꽃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거나 새에게 모이를 줄 시간이 있었다. 의사들은 환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정성껏 돌볼 시간이 있었다. 노동자들은 일에 대한 애정을 갖고 편안하게 일할 수 있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가능한 한 짧은 시간 내에 가능한 한 많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저마다 무슨 일을 하든 자기가 필요한 만큼, 자기가 원하는 만큼의 시간을 낼 수 있었다. 시간이 다시 풍부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