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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주인'에게 '명령'이라니, 말이 되나?

by 답설재 2025. 12. 29.

 

 

 

그게 궁금했다.
선거 때면 국민이 주인이라고 (가식적으로) 추켜세우고, 권력과 지위를 가지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홍수가 났다. 대피하라!", "병 걸린다. 모이지 마라!" "안 되겠다! 얼어붙게 해야겠다!" 명령을 내리는 데 재미를 붙였나 싶었다.

'보통 사람들'이 술술 읽을 수 있는 철학책을 자꾸 내는 '알랭 드 보통'의 《불안Status Anxiety》(정영목 옮김, 은행나무 2024)에서 그 설명을 발견했다(72~73).


17세기 중반에 들어서야 정치적 사고가 평등주의적인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가기 시작했다.
토마스 홉스는 《리바이어던Leviathan》(1651)에서 개인은 사회의 탄생 전부터 존재했으며, 오직 자신의 유익을 위해 이 사회에 합류한 것이고, 보호를 대가로 타고난 권리를 내주기로 동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수십 년 뒤 존 로크가 《통치론Two Treatises of Government》(1689)에서 되풀이하게 된 지적의 맹아적인 형태였다. 로크의 주장에 따르면 신은 아담에게 이 땅을 다스릴 "개인적 지배권"을 준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에게 그 권리를 주어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게 했다. 통치자들은 민중의 도구이며 전체의 이익을 추구할 때만 복종을 받을 수 있다. 놀라운 근대적 사고가 탄생한 것이다. 정부는 자신이 통치하는 모든 사람에게 번영과 행복을 누릴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때에만 정당성을 얻는다는 주장이었다.


나는 이런 데 대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한 적이 없었다. 누가 가르쳐주었는데 잊고 딴소리를 하는 걸까?

이보다 정교한 설명은 얼마든지 있겠지?
그러나 이 정도 개요만으로도 '주인'과 '명령'에 대한 해석은 가능해서 이의가 없다.
'주인'이라는 걸 잊지 않고, '명령'은 적거나 없는 게 좋다는 것만 명심해 주면 거기에 대한 이의도 없겠다.

가능하면 '명령'이라는 단어를 쓰지 말고 요청, 부탁 이런 말을 쓰면 부드러울 것 같다.

생각은 이렇지만 다 늙어가는 내가 뭘 알겠나.

잘들 알아서 하겠지. 나는 젊은이들을 전적으로 신뢰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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