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게 궁금했다.
선거 때면 국민이 주인이라고 (가식적으로) 추켜세우고, 권력과 지위를 가지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홍수가 났다. 대피하라!", "병 걸린다. 모이지 마라!" "안 되겠다! 얼어붙게 해야겠다!" 명령을 내리는 데 재미를 붙였나 싶었다.
'보통 사람들'이 술술 읽을 수 있는 철학책을 자꾸 내는 '알랭 드 보통'의 《불안Status Anxiety》(정영목 옮김, 은행나무 2024)에서 그 설명을 발견했다(72~73).
17세기 중반에 들어서야 정치적 사고가 평등주의적인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가기 시작했다.
토마스 홉스는 《리바이어던Leviathan》(1651)에서 개인은 사회의 탄생 전부터 존재했으며, 오직 자신의 유익을 위해 이 사회에 합류한 것이고, 보호를 대가로 타고난 권리를 내주기로 동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수십 년 뒤 존 로크가 《통치론Two Treatises of Government》(1689)에서 되풀이하게 된 지적의 맹아적인 형태였다. 로크의 주장에 따르면 신은 아담에게 이 땅을 다스릴 "개인적 지배권"을 준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에게 그 권리를 주어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게 했다. 통치자들은 민중의 도구이며 전체의 이익을 추구할 때만 복종을 받을 수 있다. 놀라운 근대적 사고가 탄생한 것이다. 정부는 자신이 통치하는 모든 사람에게 번영과 행복을 누릴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때에만 정당성을 얻는다는 주장이었다.
나는 이런 데 대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한 적이 없었다. 누가 가르쳐주었는데 잊고 딴소리를 하는 걸까?
이보다 정교한 설명은 얼마든지 있겠지?
그러나 이 정도 개요만으로도 '주인'과 '명령'에 대한 해석은 가능해서 이의가 없다.
'주인'이라는 걸 잊지 않고, '명령'은 적거나 없는 게 좋다는 것만 명심해 주면 거기에 대한 이의도 없겠다.
가능하면 '명령'이라는 단어를 쓰지 말고 요청, 부탁 이런 말을 쓰면 부드러울 것 같다.
생각은 이렇지만 다 늙어가는 내가 뭘 알겠나.
잘들 알아서 하겠지. 나는 젊은이들을 전적으로 신뢰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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