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아파트는 우리 동네 북쪽 꼭대기 산비탈에 있다.
버스로 중심가에 내려가려면 일곱 번째 정류장에 내린다. 식당 같은 식당은 거기에 있다.
나는 텔레비전에 나온 집에는 가지 않는다.
'이번에는 좋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한 번씩은 속지만 그런 집을 자꾸 갈 필요는 없다.
베트남 쌀국숫집은 이십 년 가까이 드나드는 집 중 하나다.
상호는 잘 모른다. 거기 가면 있다. 희한한 단어여서 암기하기도 싫고 귀찮다. 그냥 "쌀국숫집에 갈까?" 하면 된다.
그 집 메뉴는 다양하다. 한두 번은 다 먹어봤다.
튀김 종류, 볶음 국수류 등을 제외하면 우리가 즐겨 먹는 메뉴는 따뜻한 국수류가 된다.
한동안 이름이 고약한 무슨 국수를 먹었는데, 그 국물이 점점 짜게 되어 이제 '사절'이다.
지금 즐겨 먹는 국수는 해물쌀국수다. 메뉴판(키오스크)에 적힌 이름은 베트남 말이어서 암기하지 못한다.
해물쌀국수도 매운 해물쌀국수, 순한 해물쌀국수 두 가지인데, 아내는 매운 것, 나는 순한 것을 먹는다.
그걸 먹으며 땀을 흘리는 사람은 엉뚱하게도 나다.
나는 2009년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지병이 드러나 응급실, 중환자실, 일반실을 몇 번씩 드나든 이후 맵고 짠 음식을 싫어하게 되었다. 매운 건 땀 때문이다.
순한 해물쌀국수는 입에는 맞는데 땀이 솟구쳐 나는 할 말이 없다.
휴지로 그 땀을 닦으며 먹자니 바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다.
아내가 "이 집 사장은 휴지값도 못하겠다"고 해서 내가 "그럼 휴지값을 별도로 지불하겠다고 하지 뭐" 한 적도 있다.
그 식당 사장은 날카로워 보여도 바지런하고 싹싹한 중년이다.
메뉴판에 우리가 가는 그 식당을 "본점"이라고 표시해 놓아서 나는 속으로 '웃기고 있네' 했었는데 어? 이웃동네에 분점을 냈다고 하더니 어느 대도시의 분점, 저 아래 남해 쪽 어느 도시 분점을 비롯해서 이제 일곱 군데나 되었다.
사장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그 사장이 출장 갔을 때 그 사장 부인에게 "사장님!" 하고 부른 적이 있다. 그러자 그 부인이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응대해 주었다.
사장이 가게에 있으면 모든 점이 확연히 다르다.
분위기부터 조용하고 질서가 잡힌다. 양쪽 벽에 설치된 대형 화면 음악영상도 사장은 적절한 채널을 계속 보여주는데 사장이 없으면 이걸 보여줬다 저걸 보여줬다 해서 정신도 없고 재미도 없다.
사장이 있으면 음식 맛도 다르다.
우리가 일전에 예방주사를 맞고 갔을 때의 그 해물쌀국수는 일품이었다.
사장이 없을 때의 순한 해물쌀국수는 채소에서 비린내가 날 때도 있고, 집어넣은 해물들이 달아나 버린 걸 몰랐는지 멍청이 같은 해물만 몇 조각 남아 썰렁 그 자체일 때도 있고, 국물이 다 식어가거나 너무 짜거나 어쨌든 한두 가지 단점은 있기 마련이다.
그러다가 사장이 있으면 그야말로 흠잡을 데가 없다.
매운 해물쌀국수도 순한 해물쌀국수도 그저 일품이다.
나는 가게에 들어갈 때마다 테이블에 얹힌 자그마한 키오스크 화면에서 해물쌀국수를 찾으려고 발버둥을 치는데, 아내는 안경이 다초점이어서 대충 보이는데도 그걸 만지려고 하질 않고(그런 것 상대하기를 싫어해서) 남남처럼 앉아 있다가 내가 간신히 찾아놓으면 그제야 맞다고 한다.
그럴 때도 종업원들은 '나도 늙으면 저렇게 되나?' 생각하지 않고 '나 몰라라' 하지만, 사장이 있으면 예전에 쓰던 종이 메뉴판을 부리나케 가져다준다.
우리는 매번 '사장님'이 가게에 있기를 기대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건 그냥 확률 높은 로또 식이어서 매번 기대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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