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팔자 좋은 사람은 문점 안 온다. 그런 사람들은 점치는 것도 이해 못 한다. 이건 만고천추의 학문이다. 성공할 때 크게 성공하는 자도 있지만, 그런 경우 자빠질 때 시원하게 자빠진다. 잘되는 놈 부러워 마라. 다 물 위의 거품이다. 높이 오른 용은 내려갈 일만 남아 있다. 잘되지 않아도 된다. 정도만 지키면. 단, 비극이 보여도 말하지 마라. 언제 죽는다고 말하지 마라. 아름다운 거짓말을 해라. 고비가 있을 것이다. 그 정도만 말해라."
"솔직하게 말하면 안 됩니까?"
"남의 인생에 개입하지 마라. 인생의 방향성만 말해줄 뿐. 부적 쓰면서 겁주는 건 이류나 하는 짓이다."
점쟁이들이 나누는 대화다.《현대문학》2025년 3월호에 실린 단편소설 「배신」(윤보인)에서 봤다.
이런 부분도 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조직 생활 못 하는 자가 있고, 평생 사법시험에 붙지 못하는 자가 있으며, 가진 거 쥐뿔 없어도 처복 기막힌 자 있고, 미인이어도 사내만 만났다 하면 모욕을 당하는 자가 있으며 남들 다 부동산으로 재미 볼 때 꼭 집값 떨어지는 지역으로만 이사 가는 자가 있었다.
그래도 그건 낫지. 가장 큰 상처는 인간의 배신인데, 겁재 끌어안고 좋아 죽겠다며 히히덕거리는 인간을 보면 차마 해줄 말이 없었다. 그 모든 사바세계의 고통을 넘어가는 일.
'겁재 끌어안고 좋아 죽겠다며'
겁재가 뭔가? 형제다. 형제를 '비견겁재'라 했다.
비견(比肩)·겁재(劫財)는 명리학에 나오는 용어이다.
'비견'이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뜻이고 '겁재'는 재물을 겁탈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형제간이 '비견'일 때는 참 좋지만 '겁재'가 되면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원수가 되고 마는 것이다.
관계라는 게 묘해서 동생이 형을 존중하고 따르면 좋겠지만, 동생이 잘나고 똑똑하거나 돈을 많이 가지게 되면 그중에는 그가 형 노릇을 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있으니 그게 탈이 되는 것이다. 또한 형제 모두 가난하고 서러우면 '비견'으로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 어려움을 지나면 그만 서먹서먹해지는 경우가 많은 것도 현실이다. 말하자면 가난한 집안에는 '비견'이 많고, 돈이 많은 집안에는 '겁재'가 많다는 사실이다. 이 말이 틀린 것이라면 형제간을 예부터 '비견'과 '겁재'라는 용어로 표현하는 사례도 없었을 것 아닐까?
우리의 부모님께서 그처럼 애지중지하시고, 하나라도 더 두고 싶어 하시던 그 형제자매…… 그러나 '그 참 이상하다. 왜 내게 그렇게 대할까?' 까닭 모를 틈이 생기면 그건 돈 때문인 게 형제자매간인 것은 아닐까? 나중에 알고 보면 그는 그때 이미 돈에 물이 들어 형제의 인연이고 뭐고 다 팽개친 게 세상 아닐까?
형제, 글쎄, 없으면 '외로울' 때가 있고, 있으면 '괴로울' 때가 있는 인연이 형제가 아닌지 모르겠다.
"가장 큰 상처는 인간의 배신인데, 겁재 끌어안고 좋아 죽겠다며 히히덕거리는 인간을 보면 차마 해줄 말이 없었다. 그 모든 사바세계의 고통을 넘어가는 일."
소설이긴 하지만 윤보인 작가의 이 표현은 가슴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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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견(比肩)·겁재(劫財)에 관한 부분은 2011년 12월 8일에 쓴 졸고 "형제란 무엇일까?"의 뒷부분을 일부 수정하여 새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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