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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아침 뉴스를 시청하는 이유

by 답설재 2026. 3. 30.

알랭 드 보통 《뉴스의 시대》표지화(부분)

 



자정 무렵에 잠자리에 드는 나는 여섯 시에 일어나 봤자 수면 시간이 여섯 시간이지만 사시사철 새벽 네시만 되면 일어나는 아내는 그만큼 일찌감치 잠든다.

아내는 다섯 시 반쯤 TV를 틀어놓고 아침 뉴스가 시작되는 여섯 시를 기다린다.
그러니까 나는 잠이 깨자마자 뉴스를 시청하게 되는데  나는 그게 엄청 싫다.
'잘난 척하는', 아니 세계를 들썩이는 몇몇 '잘난' 지도자 소식도 반갑지 않고, 누가 돈을 엄청나게 많이 버는지, 누가 고약한 짓을 했는지, 그런 것들을 알아야 하거나 알게 되는 것이 싫다.
더구나 그런 뉴스를 신이 나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전하는 기자들도 싫다.
아직은 방송 장비가 미흡해서 나지막하게 이야기하면 잘 들리지 않기 때문인지, 기자들이 고함을 지르는 이유도 의문이지만, 왜 아침부터 뉴스를 전해야 하는지 그것부터 의문이다.
아침엔 좀 조용히들 지내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것이다.

그렇지만 어떻게 하나.
안 보면 될 것 아니냐,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나에게는 평생 그렇게 해온 내 아내를 설득할 힘이 없다. 힘이라기보다 논리가 빈약하다.


뉴스에 대해 아예 책을 한 권 쓴 알랭 드 보통은, 그 책에서 특징적인 어느 한 가지를 강조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온통 뉴스에 대해서라면 이 책에 다 있다는 듯 '뉴스 백과사전'을 썼기 때문에 거기에는 아내의 관점을 충분히 대변할 수 있는 부분도 버젓이 나와 있다.

그는 "뉴스란 본래 오랫동안 동요하고 겁먹고 괴로워하는 대중을 간절히 필요로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다시 기운을 차릴 수 있는 마음가짐을 유지해야 할 더 큰 책무가 있다."고 했다(《뉴스의 시대 The News-A User's Manual》 62).
그 책에서 일단 그렇게 써놓은 보통은 이번에는 다른 책에서 위와 같은 생각을 여실히 설명하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보여주고 있다(《일의 기쁨과 슬픔》 265).

'그다음' 기사는 테니스 코치와 열세 살짜리 제자 사이의 연애를 시시콜콜히 까발린다. 발광과 파국에 이른 것이 분명한 이 이야기들은 역설적으로 위로가 되기도 한다. 그런 것들과 비교할 때 우리는 제정신이고 복을 받았다고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이야기들에서 고개를 돌리면서 우리의 예측 가능한 일상을 확인하고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욕망을 단단하게 묶어둔 것이 너무도 감사하고, 놀라운 자제력을 발휘하여 우리 동료를 독살하지 않고 친척을 앞마당에 묻지 않은 것이 너무도 자랑스럽다.('그다음'은 의미 전달을 위해 내가 마음대로 넣은 단어)

그래, 그렇겠지. 꼴 보기 싫은 사람이 TV 화면에 자꾸 비친다고, 혹은 어떤 기자가 아침부터 고함을 지른다고, 그래서 화가 난다고 온갖 고난을 다 겪어 너덜너덜해진 아내에게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지.
뉴스를 보며 '나는 늘그막에 이르러 하필 저런 인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다짐하는 것도 괜찮은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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