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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꽃들에게 미안함

by 답설재 2026. 3. 28.

 

 

 

내가 심지 않은 것들이다.

돌보지도 않은 것들이다.

내가 없애버릴 것 같으니까 일찌감치 꽃을 피운 것도 있다.

그런데도, 벌나비도 없는데도, 저렇게 꽃을 피운 것들이다.

보는 이 아무도 없다. 나만 와서 본다.

하늘은 내려다보나, 바람은 지나다가 만져보고 가나.

미안하다.

누구였던가, 내게 물건을 갖다 주러 와서 개나리라며 볼펜만 한 막대기를 꽂아놓고 가더니 마침내 꽃을 피웠다. 기어이 살아나서 이제 명실공히 개나리가 되었다. 서너 해가 가도록 잊고 있었다. 미안하다.

회양목이 꽃을 피웠다. 회양목도 꽃이 피나. 아파트 회양목은 꽃을 피우지 않는다. 저 영롱한 꽃이 왜 피었나. 무슨 신호를 보낸 것인가 알 수가 없으니 미안하다.

다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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