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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살아 있는 것이 무안해질 때

by 답설재 2025. 3. 25.

 

 

 

오늘 오전에 첫 제자 J가 전화를 했다. 가끔 안부를 묻는 아이다. 옛 시골에서는 나이가 넘어서 입학한 경우가 허다했고 이 아이가 대표적이어서 올해 나이가 일흔이다. 그러니 아이라고 하기보다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낫겠다.

"그래, 잘 지내는가?"

워낙 느리고 우물쭈물하다가 안부 전화라는 걸 밝히는 '사람'이어서 내가 먼저 물었더니 그렇단다. 그리고 그제야 내 안부를 물었다.

 

S가 죽었다고 했다.

오래 살려고 술담배도 하지 않고 조심하더니 지난해 12월에 가버렸다고 했다.

 

S는 J와 함께 나이가 많아서 학교에 다녔지만 점잖은 듯하면서 말썽도 부리고 속도 끓여주었다. 둘 다 4학년 때부터 3년간 내리 내가 담임을 하며 졸업반이 된 경우로 공부는 뒷전들이었고 어디 싸움질을 할 만한 아이가 없나 살피다가 서슴없이 나서는 녀석들이었다.

 

한 번은 교무실에 앉아 있는데 몇 녀석이 헐레벌떡 들어왔다.

"선생님, S가 공사장에서 발을 다쳤어요!"

"오라고 해!"

당장 그렇게 '지시'했는데도 녀석들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왜 데리고 오지 않느냐고 의아해했더니 올 수가 없단다.

영문을 모른 채 어슬렁거리며 가보았더니 이런! 거푸집에 박힌 대못에 발바닥이 찔려 엉거주춤 서 있었다. 그 나무기둥을 끌고 교무실로 갈 수는 없는 일 아니었겠나.

상황을 파악한 나는 다짜고짜 그 나무기둥을 밟고 두 손으로 녀석의 발을 힘껏 잡아당겼다. 그건 정말이지 나 아니면 그 누구도 녀석의 그 발을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병원에 갔나?

천만에!

그런 곳엔 병원이 없다.

그럼 학교 보건실에 갔나?

"학교에 무슨 보건실? 행정실도 없는데... 내가 서무도 보고 경리도 봤는데?" 그런 시대였다.

어디 보관된 소독약을 찾아서 좀 과감하게 문질러 주었고 하교 전에 한 번 더 소독해 주었을 뿐이었다. 나는 실제로 아이가 아프다고 하면 "이리 나오너라!" 불러내서 호~ 하고 불어주거나 한동안 이마를 짚어 주었고, 그러면 아이는 싱긋 웃으며 기분 좋아했었다.

 

한동안 그렇게 지내더니 어느 날 수업을 시작하려는데 한 놈이 일러바쳤다.

"선생님, S가 도망갔어요."

"언제?"

"학교 와서 바로요."

'일찍도 일러바치는구나. 바로 좀 이야기해 주지 않고...'

"너희들 공부 좀 하고 있거라. 내 좀 다녀오마."

아이들은 숙연해졌고, 나는 자전거를 타고 읍내를 향해 달렸다. 면소재지를 통과, 동네를 지나, 잿마루에 올라가 내려다봐도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거기서부터는 사정없는 내리막이다. 브레이크를 밟으며 한참 내려갔더니 저쪽 앞에 녀석이 자전거를 세우고 나를 뒤돌아보고 서 있었다. '들켰구나!' 했겠지.

"가자!"

내가 헉헉거리며 그렇게 말하자 두 말도 않고 따라왔다.

나는 그게 두고두고 신통했다. 선생님께 들켰으니 도리가 없다고 생각할 만큼 아이들이 순진하던 시절이었다.

 

서울에 올라온 S가 늦게 장가를 들었다.

주례사를 마치고 건물 밖으로 나가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있을 때였다.

그 옆에 서 있던 한 젊은 녀석도 담배를 꺼냈는데 그 모습을 본 S가 그를 이끌고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한참만에 혼자 돌아왔다. 식사를 하며 들었더니 S가 그 젊은이를 끌고 가서 누구 옆에서 담배를 피울 생각을 했느냐고 아주 혼을 내주더라고 했다.

 

듣기로는 녀석은 돈도 제법 벌고 아름다운 중학교 선생님과 결혼해서 잘 산다고 했다.

그렇게 만난 뒤로는 어릴 때 애를 먹인 일들이 너무 송구스러워서 도저히 나를 찾아올 수가 없다고 했다는데 죽고 만 것이다.

죽으면 그만이다.

결심을 해도 찾아올 수가 없다.

 

나는 두통 징후만 있어도 상비약을 마셔대고 좋지 못한 정크푸드 좀 먹으려고 할 때 아내가 못마땅해하면 화를 내면서도 그 자리에서 그만두며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 그렇게 벌벌 떨며 사는 건 사실은 죽을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고, 그 결과로 지금까지 멀쩡하게 살아 있는 것이다.

드문드문 가깝던 사람들이 사라져 가지만 나 자신은 아직 나이가 아주 많거나 죽을 때가 된 건 아니라고 생각하며 '뻔뻔하게'(남들은 그렇게들 생각하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버젓하게') 살아간다.

내 생각은 그건 '사실'이다. 아주 객관적이다.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 세상인데......

다만 제자의 부음을 들은 이런 날은 참 무안하고, 괜히 짜증이 나고, 그러면서도 겸연쩍다.

좀 일찍 죽으면 이래저래 깔끔하긴 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언제 죽음 앞에 이것저것 쟀나? 그것도 아니다. 두통약 먹은 건 아프면 귀찮은 것이고, 정크푸드를 자제하고 포기한 건 그 순간 아내가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제자의 죽음 앞에 나는 무안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