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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강아지의 3단계 행동

by 답설재 2025. 3. 19.

 

 

 

강아지에게도 영혼이 있을 것을 나는 확신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강아지에게는 정신은 있지만 영혼 같은 건 없다고 하는데, 그건 사람이 그따위 동물보다 존귀하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겠지만 나로서는 인간이 지배적이긴 해도 이것저것 다 생각하면 인간이 더 존귀할 까닭은 별로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거짓말을 하고 사기를 칠 줄 알아서 영혼이 있는 것인가?

배신을 할 줄 알아서?

말을 할 줄 알아서?

돈으로 다른 사람을 부릴 줄 알아서?

그따위라면 다 시시하다.

사기를 치고 협박하고 배신할 줄 알기 때문에 영혼이 있는 것이라면 나는 차라리 내게는 영혼이 없는 게 나을 것 같다.

이건 산책로에서 만나는 강아지들을 보며 한 생각이다.

 

 

#

 

 

저 강아지는 지금 좀 점잖다.

'저 구멍으로 들어갔는데, 왜 들어가기만 하고 나오진 않는 걸까?'

주인이 들어간 바로 앞 건물의 출입구를 주시하고 있다.

 

마침내 주인이 보이자 녀석은 반가운 음성으로 몇 번을 짖었다. "왕! 왕! 왕!"

그러면서도 주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주인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사람이 그렇게 한다면 아예 스토킹이라고 하든지, 너무 옥죄어서 함께 살아갈 수가 없다고, 차라리 헤어지자고 하지 않을지 모르겠다.

 

주인이 운전석에 앉았을 즈음, 강아지는 앙칼진 음성으로 짖기 시작했다.

그건 분명 꾸중이었다.

"왜 여기만 오면 매번 나를 남겨놓고 가는데? 말해 봐, 말해보란 말이야! 깨앵! 깨앵! 깨앵!"

같잖은 꾸중이고 내가 듣기엔 역겨웠지만 주인이 듣기엔 어땠는지 궁금했다.

주인은 아무 말 않고 핸들을 잡고 그곳을 떠났다.

나는 생각했다. '강아지는 3단계의 행동(점잖게 기다리기→반가워하기→따지고 꾸중하기)을 했구나.'

주인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여기만 오면 야단이네. 차라리 묵비권을 행사하고 말자. 쯥~'

 

그 강아지가 내 말을 들었다면 이러겠지.

"웃기고 있네. 내가 한 행동이 3단계였다고? 이 영감탱이야, 지금 나 데리고 장난하냐? 장난해!? 내가 애간장을 태운 걸 그따위로 축약한다고? 집어치워! 한심한 늙은이 같으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