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룩 몇 마리를 빈 어항에 넣는다. 어항의 운두는 벼룩들이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는 높이다. 그다음에는 어항의 아가리를 막기 위해서 유리판을 올려놓는다. 벼룩들은 톡톡 튀어 올라 유리판에 부딪친다. 그러다가 자꾸 부딪쳐서 아프니까 유리판 바로 밑까지만 올라가도록 도약을 조절한다. 한 시간쯤 지나면 단 한 마리의 벼룩도 유리판에 부딪치지 않는다. 모두가 천장에 닿을락 말락 하는 높이까지만 튀어 오르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유리판을 치워도 벼룩들은 마치 어항이 여전히 막혀 있기라도 한 것처럼 계속 제한된 높이로 튀어 오른다.”
『상상력 사전』(베르나르 베르베르)이라는 책에 나오는 ‘벼룩의 자기 제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하는 일들은 어떻습니까? 학생들은 왜 아침 9시까지 등교합니까? 그건 누가 정합니까? 방방곡곡 모든 학교가 일제히 9시에 수업을 시작하면 누구에게 어떤 점이 좋습니까? 학교 급별 수업시간은 왜 40(45, 50)분입니까? 그 시간은 왜 어느 학생에게나 일률적이고 어느 과목에나 그렇게 적용됩니까? 왜 잘 모르는 학생도 그 시간에만 배워야 합니까?
학생들은 왜 다 함께 선생님 말씀을 듣고, 왜 똑같은 교과서를 똑같은 시간에 읽게 됩니까? 왜 같은 학교 학생들은 같은 교과서로 배웁니까? 그건 누구에게 좋습니까?
왜 키가 비슷한 학생들끼리 달리고, 먼저 도착해야 박수를 받습니까? 왜 같은 크기, 같은 재질의 도화지를 준비해 주고 그림을 그리게 합니까? 학생들이 그렇게 요청하고 있습니까?
학생들은 왜 궁금한 것을 주로 선생님께 질문합니까? 학생들은 왜 똑바로 서서 큰소리로 질문하고 대답해야 합니까? 왜 내향적인 학생에게도 예외가 없습니까? 왜 일단 설명을 듣고 난 후에 질문해야 합니까?
질문 같지 않은 것들이지만 의문을 가져볼 기회가 없고, 교육을 하는 쪽과 받는 쪽 입장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때로는 그런 질문 같지 않은 질문을 하고 대답해 볼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야 치워야 할 ‘유리판’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좋은 교육을 위해서 혹 선생님 힘으로 단 한 가지라도 바꿀 수 있다면 그것도 신나는 일일 것입니다.
학생들 쪽에서 보면 그 질문은 더 복잡해질 수도 있고, 전혀 생각지도 않은 의외의 질문이 쏟아져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수한 학생들을 주 대상으로 하는 수업 전개에 회의감을 갖는 선생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회의감은 발전이 더딘 학생에 대한 책무성 때문일 수도 있고 방법상의 오류에 대한 반성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는 지위의 인물에게 존경하는 스승을 물었을 때 학창 시절에 특별한 보살핌을 베푼 선생님을 기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당사자는 흐뭇해할지 모르지만 홉스 봄은 특별한 가르침을 필요로 하는 대상은 2등급 이하이며 1등급 학생들은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잘 알게 된다고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치워야 할 유리판은 학교의 규칙 같은 것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가정교육이 부재하는 시대라고들 하고 그 현상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지만 학생들이 지식수업 말고는 다 필요 없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가정에서 담당했던 교육의 한 부분을 학교에서 걱정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것도 저 유리판을 치우는 일에 해당할 것입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책에서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넓은 호밀밭 같은 데서 조그만 어린애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것을 항상 눈앞에 그려본단 말이야. 몇 천 명의 어린애들만이 있을 뿐 주위에는 어른이라곤 나밖엔 없어. 나는 까마득한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 거야. 내가 하는 일은 누구든지 낭떠러지에 떨어질 것 같으면 얼른 가서 붙잡는 거지. 애들이란 달릴 때는 저희가 어디로 달리고 있는지 모르잖아? 그럴 때마다 내가 나타나서 그 애를 붙잡아주는 거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은 바로 그런 거야. 나도 그게 바보 같은 짓인 줄 알고 있지만 말이야.”
학생들을 지킬 파수꾼, 어쩌면 바보 같고 외롭긴 하지만 선생님뿐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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