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치바나 다카시는 《사색기행思索紀行》에서 종교는 지극히 아름답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하다는 것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글을 써놓았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종교 이야기가 아니어서 좀 편한 마음으로 옮겨 썼다.
러시아에 처음 그리스정교를 도입한 것은 10세기의 키예프 대공 블라디미르인데, 그는 그때까지 일반적으로 믿어 오던 러시아의 토착 민속종교를 버리고 어떤 종교든 세계종교에 귀의하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떤 종교가 참된 종교인지를 알아보려고, 심복을 파견하여 이슬람교, 가톨릭, 그리스정교를 차례차례 돌아보며 조사하게 했다. 조사를 마치고 돌아온 심복은 그리스정교를 제일 좋게 평가했다. 그는 보고를 하면서 그리스정교의 전례에 참가했을 때 받은 인상을 이렇게 전했다.
"이 세상에 그렇게 아름답고 찬란한 것이 있는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필설로는 그 아름다움을 다 전할 수 없습니다. 그때는 이 몸이 하늘에 있는지 땅에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지경이었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신이 바로 여기 계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아름다움 하나만으로도, 그 전례가 다른 어느 지역의 어떤 종교 전례도 능가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기서 대공의 심복이 말하는 아름다움은 오로지 음악적인 아름다움을 말한다.
다만 그 음악적인 아름다움은, 그 음을 채보해서 연주회장에서 연주를 하면 재현될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다.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종교음악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점으로 흔히 지적되는 것은, 전자에서는 표현의 주체가 신이라면 후자에서는 인간이 주체라는 것이다.(196~197)
일본은 가미가제라는 특공대의 형태로 다수(3천 명 이상)의 순국자를 낸 전통이 있는 나라이다. 자살 공격대원의 수기를 읽어 보면, 그들 대부분이 거의 종교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강렬한 정념으로 나라에 목숨을 바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차대전 당시 일본은 '현인신現人神이 지배하는 신국神國'이었기 때문에, 거기서 자란 젊은이들은 나라에 대하여 종교적 정념(열광적 애국심)을 품게 되고 나라에 목숨 바치기를 기꺼워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원으로 선발된 한 조종사 학교 학생은 일기에 이렇게 적고 있다(『학도 출진 기록』, 光人社).
"크게 기념할 만한 날이다. 나의 몸과 마음을 신국에 바칠 수 있는 날짜를 예약받은 날이다. 이 얼마나 기쁜 일이냐. 영광스럽기 한량없다."
이들은 실제로 적의 전함에 뛰어들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9월 12일, 무역센터로 돌격하는 비행기의 모습을 텔레비전을 통해 계속 반복해서 보다 보니, 문득 그 빌딩이 당시에 특공대 비행기가 뛰어든 전함의 브리지처럼 보여서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 충돌하는 순간에 저 비행기의 조종석에 앉아 있던 이슬람 과격파 대원들에게는 자기가 악을 행하고 있다는 의식은 조금도 없었겠지. 오히려 '나는 지금 신의 품으로 뛰어들고 있다.'라는 생각에 일종의 법열法悅에 들어 있지 않았을까?
종교의 무서움이 바로 여기 있다. 그 신앙의 안과 밖에서 정의와 악은 완전히 역전되고 만다(43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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