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장 그르니에 《카뮈 - 그르니에 서한집》
김화영 옮김, 책세상 2012
2012년에 구입해 놓았던 책이다. 보관할 책과 버릴 책으로 구분해서 과감하게 버리기로 하니까 더러 섭섭하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한데, 버리는 데 재미가 붙으니까 덜 읽었어도 '버릴까?' 싶을 때가 있다.
카뮈와 그르니에가 주고받은 235편의 이 서한집도 이미 '절판'이어서 덩달아 시시한 느낌을 받았을까, 여남은 편 읽고 '그만 읽고 버릴까?' 했는데 큰일 날 뻔했다. 읽어나갈수록 재미가 있어서 거의 단숨에 읽었다.
그르니에와 카뮈는 '돈독한' 관계였다. '돈독한'보다는 '애절한'이 낫겠다. 스승과 제자로 만나서 카뮈가 노벨문학상을 받고 교통사고로 죽을 때까지 그 관계를 이어갔다. 그들의 관계는 점점 더 깊어갔다.
선생님.
단지 의례적인 것만은 아닌 진정한 새해 인사를 선생님과 가족 모두에게 전합니다. 이 인사가 저의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선생님은 아실 것입니다. 선생님께 기쁨이 되는 것이라면, 아니 그저 단순한 만족감을 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다 저에게도 기쁨입니다. 무엇보다도 새해에는 선생님께서 파리에 편안히 자리 잡으시고 관심 있는 작업에 몰두하시되 과로하지 않으시기를 소망합니다.
이 편지는 카뮈가 1959년 12월 28일에 쓴 것이니까 그가 죽기 며칠 전이었다(1960년 1월 3일 사망).
그 생각을 하면 눈물겹지만 나는 그들이 부럽다.
가난한 집안의 카뮈는 담임 루이 제르맹 선생님의 지도로 알제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1930년(17세)에 바칼로레아 시험에 합격, 가을 학기에 철학반으로 진급하여 철학 교사 장 그르니에를 만났다.
“나는 내가 맡은 학생들을 가르칠 책임이 있다기보다는 그들 자신에 대해 가르칠 수 있기에 교육에 애착을 갖게 되었다. 나의 성공은 거기에 있다고 믿었다.”
어디에선가 그르니에가 이렇게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르니에의 그 교육관을 카뮈의 편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너그럽게도 마치 제가 그 당시에 선생님과 동등한 존재이기라도 했던 것처럼 그때의 일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1951년 9월 18일 편지에서)
카뮈는 이 편지에서 그르니에와의 인연에 대해 감동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 편지는 이 책에서 다섯 페이지니까 실제로는 긴 편지였을 것이다.
이에 대해 그르니에의 생각은 이렇다.
당신이 내게 신세진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나를 알게 되었을 때 당신의 나이가 아주 어렸었다는 이유 바로 그것밖에 없습니다. 하기야 우리는 이미 이것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지요! 나의 생각이 당신과는 다르다 해도, 내가 당신에 대하여 느끼는 깊은 우정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당신이 고독과 침묵 속에서 일을 할 수 있다니 기쁩니다. 그것이 바로 가장 확실한 행복이 아니겠습니까?
(1960년 1월 1일 편지에서)
이런! 그해 1월 3일에 교통사고로 죽었다면 카뮈는 이 편지를 받기나 했을까? 받았으니까 이 책에 실렸겠지?
카뮈는 일찌기 과연 글을 써야 할지에 대해서 스승에게 물었고(1938년 6월 18일), 마지막까지 한 편 한 편 그르니에의 평가를 받으며 발표했다. 스승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면 그만이라는 듯했다.
그르니에는 카뮈를 친구로, 친구이면서 존중하고 존경하는 작가로 대했고, 카뮈는 스승을 더할 수 없는 친구로 대하며 긴 세월을 함께했다.
때로 친구가 옆에 있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자주 생각합니다. (...)
10월이 되면 제가 선생님을 만난 지 십삼 년이 됩니다. 그러니 이렇게 적어도 되겠지요.
선생님의 오랜 친구.
A. 카뮈
(1943년 4월 15일 편지에서)
당신이 내게 보여주는 우정에서 큰 행복을 느껴요. 당신의 작품을 읽으면서 내가 맛보았던 감탄의 느낌이 날로 커져가는 것에 더하여 이미 오래전부터 당신 자신에 대한 깊은 존경의 마음이 합해집니다. 전에는 당신이 유아독존의 바리새인처럼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했지요!
(1951년 1월 3일 편지에서)
카뮈가 그르니에에게 들려준 다음의 일화도 옮겨놓고 싶었다. 편지에는 이 일화를 이야기한 이유가 있지만 그 부분은 생략하고 옮긴다.
며칠 전에 어떤 경관이 제 자동차를 세우더니 제게 무슨 글을 쓰느냐고 묻더군요(제 직업이 운전면허증에 기록되어 있었으니까요). 전 "소설을 씁니다" 하고 간단히 대답했지요. 그랬더니 강조하듯 다시 묻는 거예요. "애정소설입니까, 아니면 탐정소설입니까"라고요. 마치 그 둘 사이에 중간은 없다는 듯이! 그래서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반반이죠, 뭐."
곧 다시 뵙겠습니다. 자주, 아주 자주 선생님을 생각하곤 합니다. 늘 같은 마음으로 말입니다.
선생님과 가족 분들의 건강을 빌며.
(1959년 12월 28일의 편지에서)
그리고 엿새 후, 그는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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