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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알베르 코엔 《내 어머니의 책》

by 답설재 2024. 11. 26.

알베르 코엔 《내 어머니의 책》

조광희 옮김, 현대문학 2002

 

 

 

 

 

 

가엾은 엄마, 이 세상의 기쁨을 철저하게 박탈당했던 엄마,

엄마, 당신이 준 내 손에 입을 맞출 수밖에 없어요.

어쩔 수 없이 벌써 푸른 반점이 나타나기 시작하던, 그 작은 손. 사랑하는 엄마,

그 서투른 성녀─자신이 성녀임을 알지도 못하는─

아, 나의 수호신, 엄마, 내 사랑하는 딸이여!

오, 내 잃어버린 젊은 시절인 엄마.

오직 한 사람뿐인 나의 유일한 간호원,

오 당신, 유일한 사람, 어머니, 내 어머니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어머니, 우리 어머니,

내 열 살 적 예쁘던 엄마, 이제는 거의 해골로 변한 그 엄마, 천천히 흘러내리는 내 눈물에도 무심하고, 귀먹고 무감각한 내 엄마,

여왕폐하,

당신들, 모든 나라의 어머니들, 내 어머니의 자매인 당신들, (...) 우리가 못난 얼굴이든 실패자이든 타락한 자이든 비열한 자이든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는 어머니들, 때때로 신의 존재 증거인 어머니들, 당신들에게 경배하나이다.

 

 

알베르 코엔이 절규하며 부른 어머니, 엄마의 이름을 여기저기에서 옮겨보았다.

사모곡(思母曲), 진혼곡(鎭魂曲)이다. 완성된 노래여서 사모곡을 쓰고 싶으면 이 책을 보고 공감하면 그만일 것 같았다.

이렇게 시작한다.

 

 

사람은 누구나 외로운 존재이고, 남의 일에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저마다의 괴로움은 황량하고 쓸쓸한 섬과도 같다.

 

 

다음과 같은 문장 여러 곳에 밑줄을 그었다.

 

 

마르세유에서 보내온, 그 작은 손으로 쓴 편지들을 다시 읽고 싶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생생하게 살아 있을 그 기호들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녀의 편지가 보이면, 나는 눈을 감은 채 서랍 속에 넣는다 ─눈을 감은 채로. 내가 더 이상 그녀의 사진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그녀가 그 사진 속에서 나를 생각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뭐라고 좀 쓰기가 어렵고 조심스러운 책이다.

무슨 말을 더할 수가 없다.

책 앞에 이런 유대 속담이 적혀 있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서 어머니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