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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by 답설재 2024. 3. 8.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황문수 옮김, 문예출판사 2023

 

 

 

 

 

 

 

사랑의 기술에 대한 편리한 지침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실망할 것이다. 사랑은 스스로 도달한 성숙도와는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탐닉할 수 있는 감상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려는 것이 이 책의 의도이기 때문이다.

 

이건 머리말 첫 문단이다. 다음은 본문 첫머리 두 문단이다.

 

사랑은 기술인가? 기술이라면 사랑에는 지식과 노력이 요구된다. 혹은 사랑은 우연한 기회에 경험하게 되는, 다시 말하면 행운만 있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즐거운 감정인가? 이 작은 책은 '사랑은 기술이다'라는 견해를 전제로 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물론 사랑은 즐거운 감정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현대인이 사랑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현대인들은 사랑을 갈망하고, 행복한 사랑의 이야기, 불행한 사랑의 이야기를 펼쳐놓는 무수한 영화를 보며, 사랑을 노래한 시시한 수백 가지 노래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사랑에 대해서 배워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걸 옳으니 그르니 좋다느니 그렇지 못하다느니 하는 건 부질없고 주제넘은 일이다.

목차를 만들어 봤다.

 

1. 사랑은 기술인가?

2. 사랑의 이론

  1. 사랑, 인간의 실존 문제에 대한 해답

  2. 부모와 자식 사이의 사랑

  3. 사랑의 대상

    - 형제애

    - 모성애

    - 성애

    - 자기애

    - 신에 대한 사랑

3. 현대 서양 사회에서 사랑의 붕괴

4. 사랑의 실천

 

 

이런 부분이 눈길을 끌었다.

 

성적 욕망은 융합을 지향하지만, 결코 육체적 욕망이나 고통스러운 긴장의 해소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성적 욕망은 사랑에 의해 자극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독의 불안에 의해, 정복하려는 또는 정복당하려는 소망에 의해, 허영심에 의해, 상처를 내고 심지어 파괴하려고 하는 소망에 의해 자극된다. 성적 욕망은 강렬한 정서와 쉽게 뒤섞이고, 그것에 의해 쉽게 자극되며 사랑은 강렬한 정서의 한 종류에 지나지 않게 된다. 성적 욕망은 대부분의 사람들 마음속에서 사랑이라는 관념과 짝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육체적으로 서로를 원할 때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기 쉽다.

사랑은 성적 결합의 소망을 일으킬 수 있다. 이 경우, 육체적 관계에는 탐욕이나 정복하려는 또는 정복당하려는 소망은 없고 부드러움이 섞일 뿐이다. (...) (85)

 

오늘날 인간의 행복은 '즐기는 데' 있다. 즐긴다는 것은 '만족스러운 소비'를 말하고 상품, 구경거리, 음식, 술, 담배, 사람들, 강의, 책, 영화 등을 '입수하는 것'을 말한다. 모든 것이 소비되고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것이다. 세계는 우리의 식욕에 대한 하나의 커다란 대상으로서 커다란 사과, 커다란 병, 커다란 유방이 된다. 우리는 젖을 빠는 자이고, 영원히 기대하는 자이고, 희망에 가득 찬 자이다. 그리고 영원히 실망하는 자이다. 우리의 성격은 교환하고 받아들이고 싸게 팔아버리고 소비하는 데 적합하다. 모든 것은, 물질적 대상과 마찬가지로 정신적 대상도, 교환과 소비의 대상이 된다.

사랑에 관한 한 상황은, 당연한 일이지만, 현대인의 이러한 사회적 성격과 대응된다. 자동 기계는 사랑할 수 없다. 자동 기계는 '퍼스낼리티라는 상품'을 교환할 수 있고 공정한 거래를 희망할 수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이 소외된 구조를 가진 사랑, 특히 결혼의 가장 중요한 표현의 하나는 '팀'이라는 개념이다. (127~128)

 

결혼을 해서 무슨 운동선수들처럼 '팀'을 이루어 세상에 대항하는 동맹을 형성하게 되고, '두 사람만의' 이기주의는 사랑과 친밀감으로 오해된다는 것이다.

그게 사랑인 줄 알고, 두 사람은 '합리적으로 독립적'이고 협동적이고 관대하고 야심적이면서 동시에 공격적이어야 하며, 남편은 아내를 '이해하고' 도와주어야 하고 아내의 새 옷이나 맛있는 요리를 칭찬해야 하며(말하자면 모든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더라도), 아내는 남편이 지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이해해줘야 하고, 주의 깊게 귀 기울이고, 생일을 잊었을 때에도 화내지 말고(말하자면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등등...

 

이러한 모든 관계에 공통되는 것은 평생 동안 남남으로 남아 있고, 결코 '핵심적 관계'에 도달하지 못하고 서로 예의 바르게 대우하고 서로 더욱 호의를 가지려고 노력하는 두 사람의 원활한 관계다.(128)

 

신경증적 사랑의 또 하나의 형태는 자기 자신의 문제를 회피하고 그 대신에 '사랑하는' 사람의 결함이나 결점에 관여하려고  '투사적 메커니즘'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개인은 집단, 민족 또는 종교와 매우 흡사한 행동을 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사소한 결점까지도 낱낱이 비판하고 자기 자신의 결점을 천연덕스럽게 무시해버린다. 항상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개조하기에 바쁜 것이다. 두 사람이 모두 이와 같이 하면─아주 흔히 있는 일이지만─사랑의 관계는 상호 투사의 관계로 변한다. 만일 내가 오만하거나 우유부단하거나 탐욕스럽다면, 나는 상대방의 이러한 점을 비난하고 나의 성격에 따라 그를 고치거나 처벌하려고 한다. 상대방도 이와 같이 한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그들 자신의 문제를 무시하는 데 성공하고 따라서 그들 자신의 발달에 도움이 되는 조치를 하는 데 실패한다.(145)

 

그럼 사랑의 실천은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일까?

키워드를 찾아보았다. 그것은 자기 훈련, 정신 집중, 인내, 최고의 관심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아무런 보증 없이 자기 자신을 맡기고 우리의 사랑이 사랑을 받는 사람에게서 사랑을 불러일으키리라는 희망에 완전히 몸을 맡기는 것을 뜻한다. 사랑은 신앙의 작용이며, 따라서 신앙을 거의 갖지 못하는 자는 거의 사랑하지 못한다(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