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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한병철 《서사의 위기》

by 답설재 2024. 1. 6.

한병철 《서사의 위기》

최지수 옮김, 다산북스 2023

 

 

 

 

 

 

정보 과잉 사회는 그 속에서 '스토리텔링'을 외친다. 사람들은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전시하듯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찰나의 장면들을 끊임없이 공유하고 공감 버튼을 누른다. 그러나 그 안에 의미는 없다. 사라져 버릴 정보에 불과하다. 무언가를 끝없이 공유하고 타인과 교류하면서도 고립감을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토리텔링은 '스토리셀링Storyselling'이라는 자본주의의 달콤한 무기가 되어 마치 의미가 있는 것처럼 사람들을 유혹한다. 세상으로부터 충격받고 저항하고 간극을 느끼며 자신만의 철학을 쌓아 올릴 기회를 빼앗고 그저 '좋아요'를 외치게 만든다.

 

 

역자 서문의 한 대문이다.

본문을 다 읽고 다시 읽었다. 더하거나 뺄 것이 없다.

문장들은 짧고 시원하다.

아포리즘 같아도 어렵거나 추상적이거나 하지 않아서 편하게 읽었다.

발트 벤야민을 중심으로 여러 작가, 철학자, 의사, 심리학자 들을 인용하고 있다.

 

 

실제로는 자기 묘사에 다름이 없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스토리'도 사람들을 끊임없이 고립시키고 있다. 이야기와 달리 스토리는 친밀감도, 공감도 불러내지 못한다. 이들은 결국 시각적으로 장식된 정보, 짧게 인식된 뒤에 다시 사라져 버리는 정보다. 이들은 이야기하지 않고 광고한다. 주목을 두고 벌이는 경쟁은 공동체를 형성하지 못한다. 스토리셀링으로서의 스토리텔링 시대에 이야기와 광고는 구분하기가 불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지금의 서사의 위기다.(121~122)

 

삶은 이야기다. 서사적 동물animal narrans인 인간은 새로운 삶의 형식들을 서사적으로 실현시킨다는 점에서 동물과 구별된다. 이야기에는 새 시작의 힘이 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모든 행위는 이야기를 전제한다. 이와 반대로 스토리텔링은 오로지 한 가지 삶의 형식, 즉 소비주의적 삶의 형식만을 전제한다. 스토리셀링으로서의 스토리텔링은 다른 삶의 형식을 그려낼 수 없다. 스토리텔링의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소비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우리로 하여금 다른 이야기, 다른 삶의 형식, 다른 지각과 현실에는 눈멀게 한다. 바로 여기에 스토리 중독 시대 서사의 위기가 있다.(136~137, 끝)

 

 

TV에 빠져 살아가고 있다.

스마트폰을 빼놓고는 집앞에도 나가지 않는 세상이다.

그 속으로 수많은 정보와 스토리가 시시각각으로 들어오는 세상이어서 잠시만 소홀해도 세상의 흐름을 타지 못할 듯한 느낌? 심지어 위기감 같은 걸 갖는다.

그런데도 그 속의 세상은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아닌 것도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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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내 불친 정바름 님 블로그를 보고 읽게 되었다. 친구를 둔 덕이란 이런 것. 정바름 님은 올해 대원 외고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