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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베르톨트 브레히트(희곡)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by 답설재 2023. 12. 27.

베르톨트 브레히트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백정승 옮김, 동서문화사 2014

 

 

 

 

 

 

 

 

30년 종교전쟁(1618~1648) 때, '억척어멈'이라 불리는 종군주보(從軍酒保) 마차 주인 안나 피얼링이 우여곡절을 겪으며 큰아들 아일립, 작은아들 슈바이처카스를 잃고 마침내 자신도 위험에 처했으나 벙어리 딸 카트린이 목숨을 바쳐 북을 울림으로써 억척어멈 자신은 목숨을 이어가는 이야기다.

 

그녀는 자신의 주변을 맴도는 군목과 취사병을 이용하기는 해도 그들의 유혹과 술수에 넘어가지는 않는다. 대사 속에 전쟁의 참상과 그 의미가 다 들어 있다(예).

 

 

억척어멈  (...) 용병대장이나 왕이 아주 미련해 부하들을 똥통으로 몰아넣으면 부하들은 결사적인 용맹성을 지녀야 하지, 그리고 덕목도 있어야 하고. 그 자가 인색해서 병사를 너무 적게 모집하면 그들은 모두 헤라클레스 같은 용사들이 되어야 하오. 그리고 그 자가 용의주도하지 못하다면 병사들은 뱀처럼 영리해야지요. 그렇지 않으면 죽어요. 마찬가지로 지휘관이 병사들에게 늘 무리한 요구를 하면 특별한 충성이 필요한 거요. 이 모두 제대로 된 나라나 훌륭한 왕과 대장이라면 필요로 하지 않는 덕목이라오. 나라가 잘되면 덕목이 필요 없어요. 모두 보통 사람이면 되지, 그저 중간쯤의 머리거나 심지어는 겁쟁이라도 괜찮아요.(127)

 

군목  저 애를 서기와 함께 보내도 된다고 생각하오?

억척어멈  예쁘지도 않은데 누가 해코지하겠어요?

군목  당신의 훌륭한 상술과 뛰어난 위기 대처 능력을 보면 놀라게 돼요. 사람들이 당신을 보고 왜 억척빼기라고 하는지 이해하겠소.

억척어멈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용기가 필요해요. 왜냐고요? 그들은 희망이 없기 때문이지요.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만 해도 그들 처지로는 쉬운 게 아니라고요. 전쟁 중에 밭갈이를 하는 것도 그래요. 그것도 하나의 용기죠. 그들이 아이를 낳는 일만 해도 용기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지요. 그도 그럴 것이, 그들에겐 전망이 없으니까. 그들은 또 서로 쳐다보기만 해도 형리들처럼 상대방을 죽이려 드니, 그러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고요. 황제와 교황을 참고 견뎌내는 것만 봐도 그들이 얼마나 용기를 지녔는지 알 만한 일이지요. 그도 그럴 것이, 목숨을 대신 바치는 일이니 말입니다. (그녀는 앉으면서 주머니에서 조그만 파이프를 꺼내 담배를 피운다) 당신이 장작을 좀 패 주었으면 좋겠는데요.

군목  (마지못해 윗도리를 벗고 장작 팰 준비를 하며) 나는 본디 영혼을 돌보는 사제지 장작 패는 사람이 아니오.

억척어멈  하지만 나는 영혼이 없어요. 그 대신 땔나무가 필요하다고요.(164~165)

 

마지막 장면(199)

 

억척어멈  여보시오들. 날 데려가시오. (마차를 끈다. 뒤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노래

    행운과 위험을 거듭하면서

    전쟁은 오래오래 가지요.

    전쟁은 백 년은 가지만은

    천민은 얻는 게 없다네.

    쓰레기가 그의 먹을거리이며, 옷은 누더기이라네!

    급료의 절반은 연대가 잘라먹는다오.

    그래도 기적은 일어날지 모를 일.

    출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봄이 오네! 깨어나라, 기독교여!

    눈은 녹아 사라져 가고, 죽은 이들은 고이 잠들었어라!

    아직 죽지 않은 이들은

    이제 길을 떠난다네.

 

 

 

이 기가 막힌 이야기에 무슨 이야기를 더하겠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