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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베르톨트 브레히트(희곡) 《갈릴레이의 생애》

by 답설재 2024. 1. 3.

베르톨트 브레히트 《갈릴레이의 생애》

백정승 옮김, 동서문화사 2014

 

 

 

사진 출처 : https://namu.wiki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희곡 "서푼짜리 오페라"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에 마음이 많이 흔들려서였는지 "갈릴레이의 생애"는 굳이 읽어야 할까 싶었었는데(그 과학자의 극적인 삶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좀 있다는 주제넘은 생각으로), '베르톨트 브레히트라는 극작가는 이 과학자를 어떻게 보았을까?' 싶어서 좀 읽다 그만두더라도 일단 읽어보자 싶었다.

 

그랬는데 (이런!) 그게 아니었다. 좀 안다는 생각은 착각이었고 그것이 부끄러워서 몰입하게 되었고, "서푼짜리 오페라"나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보다 감명 깊었다.

 

망원경을 들여다보고 발견한 별들을 가정부와 그녀의 아들에게 보여주는 장면,

더 나은 생활을 하며 연구에 열중하고 싶어 어린애인 피렌체 대공 코스모 데 메디치에게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어 청원하는 장면,

페스트 환난에도 멈추지 않는 연구,

종교재판으로 교황과 추기경들로부터 온갖 굴욕, 압박을 당하는 긴 터널 같은 느낌의 나날들,

그런 모욕을 당하면서도 비밀리에 딸 비르기니아에게 구술하여 쓴 책 《디스코르시》의 원고를 제자 안드레아 사르티로 하여금 (이탈리아로부터) 네덜란드로 가지고 가게 하는 장면...

 

 

갈릴레이의 학자다운 면모를 보여주는 장면(예)

 

갈릴레이  자, 이제 우리 흥미의 대상인 태양의 흑점이나 관찰하도록 하세. 그리고 위험을 감당하세. 새로운 교황의 보호를 너무 기대하지 말고.

안드레아  (말을 멈추게 하며) 그렇지만 파브리치우스의 별 그림자와 프라하와 파리의 태양 운무를 몰아내고 태양의 주기를 입증하겠다는 철저한 신념을 갖고 말입니다.

갈릴레이  약간의 신념을 갖고 태양의 주기를 입증하기 위해서, 자, 나는 내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게 아니라, 내 생각이 정말 옳은 건지 알아낼 작정이야.  내 말은 이제 관찰을 시작할 자네들이 일정한 희망을 품지 말라는 거야. 관찰대상이 먼지일 수도 있고 반점일 수도 있네. 우리가 중요시하는 반점을 우리가 가정하기 전에, 차라리 그것이 이 생선 꼬리라고 가정하는 것이 더 낫네. 바로 그것이네. 우리는 이제 모든 걸, 다시 한 번 더 모든 것을 의심해 보아야 하네. 우리는 한 걸음에 7마일을 가는 장화를 신고 가는 것이 아니라, 달팽이 걸음으로 앞으로 가야 하네. 오늘 우리가 발견한 것은 내일 칠판에서 지워지고 다시 발견이 되면 그때 다시 쓰일 걸세. 우리가 발견하고 싶어 한 것이 발견되었을 때 우리는 특별한 불신의 눈으로 그것을 살펴야 하네. 그러니까 우리는 지구가 멈춰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철저한 각오를 갖고 태양을 관측하세! 그리고 거기에서 우리의 노력이 좌절되면, 우리는 더는 희망할 수 없이 완벽하게 깨지게 되면 그때 비로소 슬픈 마음으로 우리의 상처를 핥으면서 묻기 시작하세. 우리가 옳지 않았는지 또 지구가 정말 돌고 있는지를! (눈을 깜빡이며) 그러고 나서 이 전제 말고는 모든 다른 전제들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가 버린다면, 그때에는 연구도 하지 않고 떠들기만 하는 작자들을 용납하지 마세! 망원경에서 덮개를 벗기고 그것을 태양에 맞추게! (그는 놋쇠거울을 맞춰 놓는다)

키 작은 사제  선생님께서 이 일을 시작하실 걸 저는 벌써 알았습니다. 마르실리 씨를 못 알아보실 때 깨달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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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원경을 많이 들여다봐서 시력이 나빠졌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