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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어처구니없음 그리고 후회

by 답설재 2023. 12. 26.

지난 23일, 카페 "오늘의 동시문학"에서 '텅 빈'(소엽)이란 에세이를 보았다.

곱게 비질을 해 둔 절 마당으로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께 인사드리고, 그 고운 마당을 다시 걸어 나오며 마음을 비우는 데는 빗자루도 필요 없다는 걸 생각했다는, 짧고도 아름다운 글이었다.

문득 일본의 어느 사찰에서 곱게 빗질을 한 흔적이 있는 마당을 보았던 일이 생각나더라는 댓글을 썼는데 그 끝에 조선의 문인 이양연의 시 '야설(野雪)'을 언급했더니 카페지기 설목(雪木)이 보고, 이미 알고 있는 시인 걸 확인하려고 그랬겠지만, 그 시를 보고 싶다고 했다.

 

 




'쥐불놀이'라는 사람은, 카페 주인 설목이 견제할 때까지 저렇게 세 번에 걸쳐 나에게 '도전'을 해왔는데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고, 두 번째 세 번째는 더욱 그래서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아마도 동시를 쓰는 작가인 것 같고, 그 카페를 자주 방문해서 하고 싶은 말을 하고는 설목이 한 마디 하면 곧 그 글을 지워버리는 걸 본 적이 있었다.

그가 저렇게 세 번이나 나를 향한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
음악을 들으며 하는 생각이나 느낌은 어떤 경우에도 동일할 수 없다. 동일한 생각이나 느낌을 가지라고 하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가령 그림을 보는 경우에도 그렇다.
그럼 시는?
말할 것도 없다.
학생들에게 시를 보여주고 네 가지 혹은 다섯 가지 답지 중에서 한 가지를 고르라는 시험문제를 출제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건 교육도 훈련도 아무것도 아니고 '폭력'이었다.
쥐불놀이라는 사람이 정말 동시를 쓰는 작가인지 의심스럽고 작가이건 아니건 그에게 어떤 답을 해야 할지 암담한 느낌이다.

#
내 관점으로는 그가 무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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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놓고 설목이 뭐라고 하자 단 11분 만에 위의 세 번에 걸친 글을 지워버리고 아래와 같이 송구하다는 글을 올렸다. 자신이 "역지사지가 되는 건 한순간"이라고 하더니... 내게는 왜 한마디 말이 없을까. 나는 결국 이 정도가 된 것이다.
오늘 아침에 카페에 가보았더니 설목과 주고받은 이 글들도 사라지고 없었다.



#
나는 주제넘기도 해서 덥석덥석 글을 본 소감을 적는 경향이 있었다.
무례한 일이었겠지.

"오늘의 동시문학" 카페는 카페지기가 친구여서 그렇지 동시작가가 아닌 사람은 나 말고는 눈에 띄지도 않는다. 어쩌면 건방진 사람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또 내가 카페지기 설목의 친구라는 걸 아는 동시작가들(특히 그의 제자들)은 설목의 눈치를 보느라고 내게 순조롭게 대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나이에 그런 걸 반성해야 한다는 건 내가 그동안 경솔했던 것이니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가장 서글픈 것은 내게는 이런 사람과 잘잘못 혹은 옳고그름, 무엇이 문학인지 등등을 이야기할 시간적 여유 같은 게 없다는 사실이다. 얼마 남지 않았을 시간을 그렇게 소비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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