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 달린 블루베리를 직박구리에게 빼앗기고 나서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어설픈 방조망을 설치했더니 영리한 그 녀석들이 그 아래로 기어들어가 새로 익은 열매들을 또 실컷 따먹고 이번에는 그 방조망을 헤치고 나오질 못해 기진맥진할 때까지 퍼드덕거리다가 지쳐 쓰러진 걸 보게 되었다.
직박구리들은 블루베리뿐만 아니라 벗지, 살구, 앵두, 대추, 보리수 열매... 달착지근한 건 뭐든 남겨둘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내가 심은 나무 열매는 내 계산으로는 내 것이긴 하지만 그들에게 물어보지 않았으니 내 계산만으로 일방적인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 않겠나 싶기도 했다.
그러니 그 녀석이 지쳐 쓰러졌거나 말거나 그냥 둘 수는 없으므로 일단 살려 놓고 보자 싶어서 방조망 아래로 손을 집어넣었더니 그럴 기력은 남아 있었던지 제법 옹차게 퍼드덕거렸고, 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려는 몸부림이 그 따스한 체온과 함께 전해져 좀 끔찍한 느낌이었다.
어디에서 이런 힘이 나오는 걸까?
하기야 잡초를 뽑겠다고 엎드려 있는 머리 위로 제 영역을 침범한 영감탱이를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듯 휙~ 휙~ 위협 비행을 할 때는 제법 바람 기운을 느끼게 하는 것이니 지쳤다고 해도 목숨을 구해야 하겠다는 필사의 몸부림은 결코 가소로운 것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내 손아귀를 벗어난 그 녀석이 줄행랑을 친 방향을 망연히 바라보며 서 있었다.
새의 뼈는 공기로 가득 차 있다. 뼛속에 작고 텅 빈, 공기가 들어가는 공간이 있어서 무게를 줄이면서도 역학 강도는 높일 수 있는 정교한 구조로 되어 있다. 새의 몸무게 중 대부분은 골격보다 깃털이 차지한다. 각 조류 종의 비행 방식이 뼛속 '공동'hollow의 개수에 영향을 미친다. 하늘을 가로지르며 활공하고 갑자기 솟아오르기도 하면서 장거리를 나는 새일수록 뼛속 공동의 수가 많고, 펭귄이나 타조처럼 헤엄치거나 달리는 새에게는 하나도 없다.
엘라 프랜시스 샌더스가 쓴 책 《우아한 우주》(프시케의숲, 2022)의 '우리에게도 날개가 있을까'라는 글에서 이 부분을 읽고 나는 또 그 새를 떠올리며 방금 읽은 문장들을 이번에도 망연히 내려다보고 앉아 있었다.
그 녀석의 뼈는 거의 텅 빈 것이었다는 말이지?
텅 빈 뼈로 날개를 움직여 그렇게 날고 퍼드덕거리고 할 수 있단 말이지?
그날 내가 녀석을 살리려고 허둥대는 통에 깃털 몇 개를 뽑히고도 줄행랑을 칠 수 있었던 그 힘은 입에 맞는 것들을 실컷 먹은 결과가 아니고 겨우 가느다랗고 짤막짤막한 그 뼈마디들, 그것조차 텅 빈 그 작은 공간에서 나온 것이었다니!
내 뼈들은 한창때보단 가늘어졌겠지만 체중은 여전하니 마음만으로도 도저히 날 수가 없는 상태가 분명하겠구나.
이렇게 해서 어떻게 그 먼 곳까지 돌아갈 수 있단 말인가.
돌아가겠다는 생각이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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