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L 시인이 올해는 첫눈이 자꾸 내린다고 했습니다.
오늘 또 눈이 내렸습니다.
해가 중천에 올라온 것이 눈구름의 배경처럼 다 보이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눈은 줄곧 내렸고, 한때 펑펑 퍼부어 오늘 오기로 한 친구에게 점심약속을 미루자고 전화를 할까, 하다가 조금만 조금만 하는 사이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눈은 그쳤는데 오늘 밤에 또 내린다고 했습니다.
어딘가 폭설이 내릴 거라는 예보도 들었습니다.
우리가 젊었던 시절의 일들이 자주 떠오릅니다.
내 친구는 점심을 먹으며 그게 일과가 되었다고 이야기해 놓고 조금 있다가 또 그 얘기를 했습니다. 나는 누구나 그렇다고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대꾸하면서도 애써서 노년의 의미를 찾은 시몬 드 보부아르를 생각했습니다. 그런 회상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 같고 그렇다면 누가 아무 생각 없이 희희낙락으로만 지내고 있을까 싶었습니다.
보부아르가 살아 있다면 나는 먼 그녀를 그리워할 것 같은 나날입니다.
친구는 얼음에 채운 코카콜라를 다 마셔 놓고 젊었던 시절이 자꾸 떠오른다는 그 이야기를 처음 하는 듯 다시 하면서 또 한 번 코카콜라를 주문했습니다.
그새 저녁입니다.
곧 밤이 깊어지겠지요.
아침나절 눈 오던 모습이나 점심때 친구를 만난 일 등이 순식간에 지나가 삽화처럼 갈피 속으로 사라집니다.
얼어붙은 눈길은 매번 누가 부탁하지 않더라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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