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처럼 읽혔다.
잔잔하게 흐르는 물 같은데 긴장감을 느끼게 했다.
의도하지 않았을 듯한 기승전결(起承轉結)이 보이는 것도 신기했다.
떠난 이가 있고 보낸 이가 있고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다.
영영 떠난 이도 보낸 이와 지켜본 이들도 다 행복한 사람들이었다(부러웠다).
지켜본 이 중에는 이 글을 쓴 시인이 있다(늦었겠지, 시인이 아니어도 시인처럼 살아보려고는 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어느 무명 시인에게 배운 것 / 문성란
버스를 기다리면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오래된 습관이다.
티끌 하나 없이 맑은 하늘이 보일 때도 있고, 구름송이를 띄운 하늘이 보일 때도 있고, 더러는 울음을 머금은 것처럼 어둡게 내려앉을 하늘일 때도 있으나 오늘은 빈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시린 하늘이다. 가지에 꽃눈을 움켜쥐고 있는 나무가 보인다. 나는 나무에 달린 꽃망울을 보거나 겨울을 통과해 봄이 가까워진 지점을 지나노라면 어떤 목소리를 듣는다. 먼 이별 앞에서 나직이 읊는 시편 같은 작별 인사.
몇 해 전의 일이다. 지병으로 오래 고생하시던 시숙님이 곧 떠날 채비를 하신다는 전화를 받고 달려가니 시숙님은 미동도 없이 눈을 감고 가녀린 들숨날숨만 반복하셨다. 잠시 후 직장에서 연락을 받고 급히 달려온 조카를 끝으로 가족과 친지들이 다 모인 것을 확인한 나의 손윗동서는 침착한 목소리로 침묵을 깨고 운을 떼기 시작했다.
보이소, 듣고 계시지예
오늘은 삼월 초이틀 지금은 오후 2시 34분입니더
하늘이 흐린 걸 보니 비가 오려나 봐요
비가 다녀가면 당신이 좋아하는 목련이 피겠네예
보이소, 잠깐 눈 좀 떠 보이소
여기 누구누구 왔는지 보이소
당신 아들 아무개와 며늘아기 여깃심더
큰딸, 작은딸, 막내딸 그리고 동생 아무개와 아무개, 당신이 보고 싶어 하던 사람들 여기 왔어예.
막냇동생인 나의 남편과 제수되는 내 이름까지 다 호명하고 나서도 작별 인사는 조금 더 이어졌다. 그 내용이 다 기억나지 않으나 마지막 인사는 또렷이 생각난다.
보이소,
그동안 고생 많았심니더
이제 여기 일은 다 내려놓고 훨훨 가볍게 가이소.
먼저 가서 내를 기다려주이소
내 곧 뒤따라 가꼬마
그동안 고마웠어요.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누구도 울지 않았고 무거운 침묵조차도 내려앉지 않았다. 시를 외는 듯 노래를 부르는 듯 구성진 가락으로 이어지는 작별 인사를 모두 귀 기울여 들었다. 사람의 신체기능 중 맨 마지막까지 살아 있는 게 청각이라니 어쩌면 서로 평소에 입 밖으로 쉬이 꺼내놓고 나누지도 못했을 그 말,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아내의 절절한 고백이 전해진 것인지 누워계신 시숙님의 지그시 감은 눈가에서 맑은 눈물 한줄기가 흐르다 머리카락 사이로 숨는 것이 보였다. 무언의 대답이 아니었을까. 동서의 작별 인사가 끝난 후 시숙님은 돌아올 수 없는 먼길을 떠나셨다. 평온한 모습으로.
우리는 한 생을 살면서 수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는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도 있고, 무언가를 남기는 인연도 있고, 생을 관통하는 중요한 만남도 있다. 그때 내가 들었던 그 구슬프면서도 구성진 가락은 그 어떤 노래보다 절절했고, 내가 아는 어떤 시구보다 아름다웠다.
이생에서 다시는 마주할 수 없는 사랑하는 사람 앞에 내놓는 작별 인사는 듣는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감동적인 시였다. 감정을 절제하고 한 구절 한 구절 속마음을 건네는 그 사랑의 인사는 마음결을 닦아주는 보드란 손수건이었고, 따뜻한 감사였고 아름다운 시였기에 나는 지금도 그날 나의 손윗동서가 무명의 시인이었다고 생각한다.
미래동시모임 동인지 《나 나왔다》(지도 박두순, 회장 김순영)에는 아홉 명이 동시 네 편, 산문 한 편씩을 보여주었다.
'일상 엿보기'로 실린 산문은 다음과 같았다.
서금복 「열두 띠 이야기하다가」
조영수 「선물」
김순영 「12살 목도리」
문성란 「어느 무명 시인에게 배운 것」
박순영 「작은 여행의 맛」
조은희 「산책로에서 만난 자연의 몸짓들」
정나래 「가슴 뛰게 하는 일」
류병숙 「꽃가위」
전지영 「노랑 생활」
다 詩 같아서 천천히 읽어야지 했는데, (이런!) 생각뿐이었고 시와 산문들을 하룻저녁에 다 읽고 말았네!
이 동인지는 또 언제 나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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