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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주용일 「꽃과 함께 식사」

by 답설재 2023. 11. 18.

꽃과 함께 식사  /  주용일

 

며칠 전 물가를 지나다가

좀 이르게 핀 쑥부쟁이 한 가지

죄스럽게 꺾어왔다

그 여자를 꺾은 손길처럼

외로움 때움에 내 손이 또 죄를 졌다

홀로 사는 식탁에 꽂아놓고

날마다 꽃과 함께 식사를 한다

안 피었던 꽃이 조금씩 피어나며

유리컵 속 물이 줄어드는

꽃들의 식사는 투명하다

둥글고 노란 꽃판도

보라색 꽃이파리도 맑아서 눈부시다

꽃이 식탁에 앉고서부터

나의 식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외로움으로 날카로워진 송곳니를

함부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 '꽃과 함께 식사' 고요아침, 2006

 

 

 

쑥부쟁이 아니면 구절초!

 

 

 

내 블로그 임시보관함에서 이 시를 '발견'했다.

독일 흑림에서 살고 있는 '숲지기' 님 블로그에서 복사해 온 것이 거의 확실한데 혹 모르겠다.

숲지기의 정원에도 여기처럼 기온이 영하로 내려갔을까?

 

이런저런 일로 마음이 흔들리고 머릿속에 또 구정물이 좀 흐르고 그런 아침에 초겨울 햇살이 저렇게 고운 걸 보며 내가 정말 반성하고 맑은 마음으로 돌아가려는 사람 맞나 싶은 시간이었다.

 

'외로움 때문에 내 손이 또 죄를 졌다'

'꽃들의 식사는 투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