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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by 답설재 2023. 8. 11.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홍성광 옮김, 현대문학 2013

 

 

 

브라만의 아들 싯다르타는 친구 고빈다와 함께 가출해서 체험으로써 깨달음을 얻는다.

득도(得道)는 지난한 것이어서 삶의 막바지에 이르러 비로소 사랑의 의미를 깨닫는다.

사위성 기원정사에서 부처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건 잠시였고, 아름다운 창녀 카말라를 만나 제2의 삶을 살게 되고 거상 카마스와미를 만나 부를 향유하기도 했지만, 노년에 이르러 마침내 뱃사공 바주데바를 스승으로 삼고 강의 흐름으로부터 시간의 초월을 배운다.

싯다르타가 카말라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싯다르타'와 헤어진 것은 '인간 싯다르타'의 가장 큰 아픔이었다. 그 아픔을 극복하는 과정은 이 '소설'이 전기와 다름을 잘 보여주었다.

 

 

싯다르타는 그 늙은이 곁에 자리를 잡고 앉아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태까지 한 번도 털어놓은 적 없는 문제를 말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쓰라린 상처, 행복한 아버지들을 바라볼 때 느끼는 부러움, 여전히 어리석은 소망과 헛된 싸움을 계속하고 있음을 털어놓았다. 그는 모든 것을, 가장 말하기 힘든 것까지 쏟아냈다. 자신의 상처를 모두 다 드러내 보였다. 오늘 강을 건너 도시로 가서 아들을 찾아 헤매고 싶었다는 이야기며, 강이 그를 비웃었던 이야기까지 죄다 털어놓았다.

그가 이야기를 하고 또 하는 동안, 바주데바는 조용한 얼굴로 귀를 기울였다. 바주데바는 그 어느 때보다 경청하고 있었다. 싯다르타의 고통과 불안이 바주데바의 귀로 거침없이 흘러들고 있었다. 싯다르타의 은밀한 희망도 그한테로 흘러들었다가 다시 싯다르타에게로 되돌아왔다. 자기 말을 경청하는 사람에게 자기의 상처를 드러내 보이는 것은, 상처가 강물과 하나가 될 때까지 상처를 씻어내는 일과 똑같았다. 싯다르타는 계속 이야기하고 고백하고 참회했다. 그리고 자기 말에 귀 기울이는 이 사람이 더 이상 바주데바가 아님을, 더 이상 하나의 인간이 아님을, 꼼짝 않고 있는 이 경청자가 빗물을 빨아들이듯 자기 고백을 빨아들이고 있는 나무임을, 꼼짝도 않는 이 존재가 강물임을, 신임을, 영원한 존재임을 강렬하게 느꼈다. 싯다르타는 이제 자신의 상처가 아니라 바주데바의 변화에 사로잡혔다. 그의 변화가 마음속 깊이 파고들수록, 그것이 질서 정연하고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졌다. 바주데바는 벌써 오래전부터 언제나 그런 존재였을 텐데, 싯다르타 자신도 그와 다를 바 없었을 텐데, 그 사실을 여태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제 신을 우러러보는 시선으로 늙은 바주데바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상태가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 없으리라는 것을 느꼈다. 그는 마음속으로 바주데바와 작별을 고하기 시작했다. (......)

 

 

석가모니 전기가 아니었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생각하면서 한참 읽다가 제2의 인물이라는 걸 알았다.

 

이 이야기는 우리의 깨달음도 이와 같다는 의미일까.

아직 아득하거나 혹 의외로 빨리 다가올 수도 있는 그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