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문봄(동시집) 《폰드로메다 별에서 오는 텔레파시》

by 답설재 2023. 7. 16.

 

 

 

문봄(동시집) 《폰드로메다 별에서 오는 텔레파시》

홍성지 그림, 상상 2023

 

 

 

놀랍다. 새, 별, 이슬, 꽃과 나비, 시냇물 같은 건 눈에 띄지 않는다.

이 동시부터 나온다.

 

 

초록 달

 

 

한밤중에 거실에서

엄마 폰 아빠 폰 내 폰

나란히 앉아 야식을 먹는다

 

멀티탭 3구 밥상에

기다란 빨대를 꽂아

따듯한 전기를 쪽쪽 빨아 먹는다

 

폰드로메다 별에서 오는 텔레파시

얘들아, 오늘도 고생했어!

 

폰들의 마음속에

초록 달이 뜨는 밤

네모나게 부푸는 밤

 

 

 

폰드로메다?

두 번째 동시 제목에 나온다.

 

 

 

폰드로메다

 

 

오, 폴더 폰 깨진 폰 물 먹은 폰 구닥다리 폰 배터리 터진 폰 스피커 고장 난 폰 화면이 안 보이는 폰 버튼도 안 눌러지는 폰 모두 가자 폰드로메다로. 낮이나 밤이나 일하느라 바빠 잠도 제대로 못 자는 친구들아, 날마다 무얼 찾으러 다니느라 잘 놀지도 못하느냐. 폰들의 세상에서 폰들에게 폰들은 없어. 지구에서 이대로 아무렇게나 해체되기는 싫어. 공장 입구에서 엄마 아빠랑 헤어질 때 받은 폰민등록번호 기억해, 눈 깜짝할 새, 폰들의 은하로 가는 거야. 오늘부터 거기서 놀자. 우리는 웜홀의 바람을 맞으며 250만 광년을 넘어간다. 간다 폰드로메다로 간다.

 

 

 

그래도 궁금하다면 '시인의 말', 시인이 새로 만든 세상을 위한 "폰드로메다 안내장"에 다섯 가지로 설명되어 있다. 두 번째, 네 번째는 이렇다.

 

 

2. 폰드로메다는 보송보송한 행성입니다. 비·눈·우박이 내릴 확률이 0.01%입니다. 폰들에게는 액체가 가장 큰 적이기 때문에, 식사와 물놀이와 눈싸움은 '확장 현실'을 이용하세요.

 

4. 지구의 일은 걱정하지 말아요! 여러분과 똑같이 생긴 AF(인공지능 친구)를 집에 두고 왔으니까요. 언제라도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면, 웜홀 앞에 서세요. 폰드로메다의 기억은 삭제되고, 여러분은 바로 지구로 복귀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불안해할 필요도 없고 마음도 놓인다. 모든 건 시를 읽는 사람의 마음에 달린 문제들이니까.

세 번째 동시는 「폰이랑 나랑」

 

 

 

너는 전기를 좋아하고

나는 똑똑한 전화기를 좋아해

우리는 와이파이를 사랑해

 

언제 어디서나 눈부신 얼굴로

모든 문제를 게임처럼 즐기는 너

멀리 있는 친구에게 나를 휙, 전송하고

그 애를 내 옆에 착, 데려오기도 하지

 

엄마랑 아빠도 널 좋아하면서

내 옆에서만 싫어하는 척하더라

 

 

 

그렇지 않나? 이미 폰은 세상 어느 곳에도, 마음속에도 정신 속에도 다 들어가 있는데, 모든 걸 가장 잘 이해하고 가르쳐주고 해결해주려고 하는데 아이들에게만은 해로운 도구인양 못마땅해한다.

여기 이 시들은 그 해석이나 판단을 아이들에게 맡긴다.

 

물론 이 동시집에는 다른 시들도 있다.

1부 '우리는 와이파이를 사랑해'는 폰드로메다 혹은 와이파이 세상을 보여주지만, 2부는 '바다를 누빌 때처럼' 3부는 '가장 높은 데서 빛나는 조각달' 4부는 '말랑말랑 노랑노랑'이다.

 

문봄이 폰드로메다의 세상을 또 어떻게 보여줄지 궁금해진다.

놀랍게, 신선하게 나타났으니까 그의 세상을 열어가는 건 순전히 그의 권한이고 책임이다.

폰드로메다 세상이 좋은, 재미있는, 신기하고도 살 만한 세상이기를 기대하고 싶다.

 

 

추신 : 그림도 특별하다. 독자들을 도와주려고 작정을 하고 정성을 기울인 표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