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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이희형 「플랫폼」

by 답설재 2023. 7. 23.

플랫폼

 

 

이희형

 

 

나는 우산을 들고 승강장에 서 있습니다 오늘 저녁엔 제사가 있었습니다 이곳엔 비가 오고 있고 반대편에서는 눈이 오고 있습니다 나는 검정 장우산을 썼습니다 그게 어른스러운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천천히 쌓이는 눈을 지켜보다가 전광판에 양쪽 열차가 모두 지연되고 있다는 알림이 뜬 것을 보았습니다 귓가에서 빗소리가 터지고 있습니다

 

반대편 승강장에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장갑과 목도리를 끼고 모두 누군가의 손을 잡고서 먼 곳에서 다가오는 열차의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가지 않는 곳을 내가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가오는 열차가 어느새 승강장 앞에 섰습니다 사람들이 분주히 열차에 오릅니다 정해진 자리에 앉는 사람들이 흐릿하게 보이고 열차가 사라지고 이내 사라지는 소리만이 정거장에 남았습니다

 

지연된 열차가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아직 아무도 나를 데리러 오지 않았는데 해가 지고 승강장의 불이 모두 꺼졌습니다 우산 속에서 빗소리를 들으면서 저녁을 맞고 있습니다

 

산 사람들끼리 죽은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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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형 1991년 서울 출생. 2018년 『현대문학』 등단.

 

 

 

 

 

 

 

2018년 12월 《현대문학》에서 이 시를 읽었는데 비가 내리고 있어서 그런지 그 느낌은 여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