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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기차는 8시에 떠나네'

by 답설재 2023. 6. 14.

① 그대 귀 뒤의 카네이션
② 도시 어린이의 꿈
③ 우체부
④ 5월의 어느 날
⑤ 기차는 8시에 떠나네
⑥ 당신이 마실 장미 향수를 주겠네
⑦ 오토가 왕이었을 때
⑧ 우리에게도 좋은 날이 오겠지
⑨ 뱃노래
⑩ 떠나버린 열차
⑪ 내 마음속의 공주
 
 

 

 
 
 
오페라 『카르멘』으로 이름을 날렸다는 아그네스 발차의 CD 『조국이 내게 가르쳐준 노래』에 실린 노래들은, 가사를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이내 친숙하고 편안했습니다. 그리스가 터키와 독일의 침략을 받았을 때부터 불렸다는 설명대로 우수어린 노래들이었습니다.

친숙하고 편안했다는 건 아그네스 발차의 음색이 결코 부드럽진 않은 것 같은데도 그렇게 느껴졌다는 것으로, 한동안 차를 갖고 나가게 되면 꼭 그 CD를 들었습니다.
위안이 되었습니다.

나는 지금도 그 노래들을 들으면 어려웠던 날들에 이어 끝날 줄 모르는 어려운 시간들로 긁히고 긁혀 상처난 곳이 아물지 못하고 다시 긁혀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바닥이 드러난 핍진한 가슴을 안고 그냥 가는 수밖에 없다고, 모든 걸 포기하자고 자신을 달랩니다.

두어 곡은 요즘도 라디오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기차는 8시에 떠나네'였습니다.


이번 어느 가을날,
저는 열차를 타고
당신이 사는 델 지나친다고
편지를 띄웠습니다

5시 59분에 도착했다가
6시 14분에 발차합니다

하지만 플랫폼에 나오지 않았더군요
당신을 찾느라 차창 밖으로 목을 뺀 십오 분
사이
겨울이 왔고
가을은 저물 대로 저물어
지상의 바닥까지 어둑어둑했습니다


이병률 시인의 「장도열차」는 잊히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요. 나는 이 시를 생각할 때마다 저절로 아그네스 발차의 노래가 떠오릅니다. 아그네스 발차의 노래를 들을 때는 또 이 시가 떠오릅니다.
이런 걸 연상 같은 단어와 별도로 기시감(旣視感)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기시감이란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겠지요. 오히려 고마운 느낌이 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관찰해본 바로는, '기시감'이란 시에서는 일단 부정적으로 쓰이고 있는 말 같았습니다.
"이 시는 기시감을 줍니다."
좋은 시가 아니라는 뜻이겠지요.

시인들은 왜 시를 짓는 것일까요?
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겠지요.
자꾸 시를 지어서 돈을 벌어 살아간다는 것이 아니라 시를 짓지 않고는 살아가는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일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도 '8시' 혹은 '열차' 단 한 단어에서 기시감을 느끼게 된다고 말하면 가혹한가요?
시인은 그걸 가혹하다고 하진 않을 것입니다.
썩지 않은 부분을 열거하기가 쉽지 않은 세상에 염치없는 소리인지 몰라도 세상에서 '시인'이란 호칭보다 더 값진 것을 찾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어쨌든 매번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창조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는 기막힌 운명을 가진 사람들일 것입니다.

 

"기차는 8시에 떠나네"

그 한 마디만에도 뭔가 있는 것 같아서...